나관중이 지은 소설 삼국지에서 전반부의 두 축이
유비와 조조라면, 이들이 죽은 뒤 소설 후반부의
흥미와 긴장감을 이어가는 두 축은 제갈량(공명)과
사마의(중달)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삼국지는 가히 제갈량 전기라고 할 만큼
제갈량 찬가로 가득하다.
소설 속 제갈량은 신출귀몰한 전략과 사람의 마음까지
읽는 혜안, 진법은 물론이고 풍수부터 천문까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캐릭터로 묘사되어 있다.
제갈량은 촉 황제 유비와 유선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활약을 하는데 반해, 사마의는 줄곧
위 황제들의 의심과 신뢰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왔다.
사마의는 조조, 조비, 조예, 조방까지 4대를 보필하면서,
손자인 사마염이 진나라를 세우고 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기초를 닦았다.
제갈량과 사마의 두 책사를 비교할 때 사마의는
제갈량에 비해 전술적인 측면에서는 약했지만,
전략적인 측면에서는 오히려 강했다고 할 수 있다.
사마의는 제갈량보다 20년이나 오래 살면서
실질적으로 권력의 최정상에 올라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라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인물이다.
< 제갈량의 북벌 >
사마의와 제갈량의 본격적인 지략 대결은 제갈량이
황제 유선에게 출사표를 올리고 대군을 동원해 위나라를
공격하는 북벌에 나서면서부터 전개된다.
그러나 모두 다섯 차례에 걸친 제갈량의 북벌은 결국
실패하고 제갈량은 오장원에서 병사하게 된다.
진수가 쓴 정사 삼국지에서는 제갈량의 북벌을 두고
"제갈량은 해마다 군사를 움직여 나갔지만, 끝내 공을
이루지 못했으니 장수로서의 지략은 다스리는 재주에
미치지 못한 것 같다"고 기술하고 있다.
< 가정 전투와 읍참마속(泣斬馬謖) >
1차 북벌에서 재갈량은 자신의 측근 장수인 마속에게
가정성을 지키도록 했지만, 마속은 제갈량의 명령을
어기고 산 속에 진을 쳤다가 사마의가 보낸 장합에게
크게 패했다.
이에 제갈량은 주변 장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속에게 책임을 물어 눈물을 머금고 참수하니
'읍참마속' 고사성어가 생겨나게 되었다.
<서성(西城)에서의 공성계(空城計) >
가정에서 마속의 군대을 물리친 사마의는 곧바로
서성으로 진군했다.
성을 수비할 군사가 부족했던 제갈량은 오히려 성문을
활짝 열고 성루에 올라 거문고를 연주했는데, 의심이
많은 사마의는 제갈량이 복병을 숨겨놓았을 것이라
짐작하고 퇴각했다.
서성에서의 공성계는 제갈량이 거문고 하나로 사마의의
대군을 물리친 유명한 일화로 소설 속에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이때 사마의가 퇴각한 것은 공성인 줄 알면서도
제갈량이 살아 남아서 위나라에 계속 위협이 되어야만
자신도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행동이었다는 해석이 있다.
< 상방곡 전투와 소나기 >
다섯 번째 북벌에 나선 제갈량은 위나라 군대의 군량을
탈취해 상방곡에 비축하고 주력인 위연의 부대를
80리 떨어진 기산에 주둔시켰다.
사마의는 촉의 주력부대가 멀리 떨어져 있어 방비가
허술할 것이라 판단하고 군량 탈환을 위해 상방곡을
공격했다.
하지만 이는 제갈량의 속임수로, 제갈량은 군량미처럼
보이는 가마니와 땅속에 유황, 염초 같은 인화성 물질을
잔뜩 숨겨 두고 상방곡 입구에 군대를 매복시켰다.
사마의와 위군이 상방곡에 들어서자 촉군의 화공이
시작되고 골짜기는 삽시간에 불바다로 변했다.
제갈량에게 속았다고 생각한 사마의는 두 아들과 함께
자결하려고 칼을 뽑았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하늘에서
소나기가 쏟아져 타오르던 불길이 다 꺼지고 사마의는
남은 군사들과 함께 도망칠 수 있었다.
소나기가 사마의에게는 천우신조가 된 반면,
제갈량에게는 천추의 한이 된 셈이다.
< 오장원에서의 수 싸움 >
사마의는 상방곡에서 치욕을 당한 뒤 오장원에서
싸우지 않고 수성전에 들어갔다.
제갈량은 사마의를 화나게 하여 성밖으로 끌어낼
목적으로 여인의 옷과 장신구를 선물로 보내 자존심을
상하게 했지만 사마의는 이에 말려들지 않았다.
사마의는 오히려 선물을 갖고 온 사자(使者)를 통해
제갈량이 식사량이 적고, 혼자서 일을 도맡아 해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채는 지략을 발휘했다.
사마의가 이처럼 오장원에서 정면 승부를 하지 않고
수성전으로 시간을 끈 것도 촉군을 두려워한 때문이
아니라, 제갈량이 완전히 패퇴하면 자신도 정적들에게
토사구팽 당할 수 있음을 우려한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어쨌든 사마의는 움직이지 않았고, 그가 예상한 대로
제갈량은 얼마 안 있어 오장원에서 병사했으며,
촉의 군대는 퇴각하기 시작했다.
<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물리치다 >
제갈량이 죽었다는 첩보를 입수한 사마의는 퇴각하는
촉군을 추격했다.
그러나 제갈량이 죽기 직전에 남긴 계책에 따라 촉군이
사륜거에 실은 제갈량의 목상(木像)을 앞세우고 반격을
가하자 사마의는 제갈량이 아직 살아있는 줄 알고
기겁을 하며 도망쳐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았다
(死孔明走生仲達)’는 일화를 남기게 되었다.
< 제갈량과 사마의에게 배울 점 >
사람들이 제갈량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다양한
재주와 지혜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비와 그의 아들
유선에게 변함없는 충성심을 보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제갈량의 충성심은 그가 북벌에 나서면서 유선에게
올린 출사표에 절절히 표현되어 있는데, "제갈량의
출사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충신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제갈량은 또한 죽을 때까지 유비, 유선 두 황제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지만 자손에게 남긴 재산은 뽕나무
800그루와 척박한 땅 15경 뿐일 정도로 청빈한 삶을
살았다는 점 또한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제갈량과는 달리 사마의는 조조와 그의 친족들로부터
숱한 모함과 수모를 당하면서도 결정적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버틸 줄 알았던 자기 통제의
승부사였다.
소설 삼국지를 읽을 때 여러 영웅 호걸들의 의리와
활극에서 재미를 느낄 뿐만 아니라, 제갈량의 주군에
대한 충성심과 사마의가 보여준 대기만성의 지혜도
함께 배울 수 있다면 더욱 유익한 독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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