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광장에 나서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인간은 밀실로 물러서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동물이다.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한국 정치의 광장에는 똥오줌에 쓰레기만 쌓였어요.
모두의 것이어야 할 꽃을 꺾어다 저희 집 꽃병에 꽂고,
분수 꼭지를 뽑아다 저희 집 변소에 차려 놓고,
페이브먼트를 파 날라다가는 저희 집 부엌 바닥을 깔구.
한국 정치가들이 정치 광장에 나올 땐 자루와 도끼와
삽을 들고 눈에는 마스크를 가리고 도둑질하러
나오는 것이죠."
"이런 광장들에 대해서 사람들이 가진 느낌이란
불신뿐입니다.
그들이 가장 아끼는 건 자기의 방, 밀실 뿐입니다.
개인만 있고 국민은 없습니다.
광장이 죽은 곳, 이게 남한이 아닙니까?
광장은 비어 있습니다."
"이게 무슨 인민의 나랍니까?
제가 남조선을 탈출한 건, 이런 사회로 오려던 게
아닙니다.
인민이라구요? 인민이 어디 있습니까?
자기 정권을 세운 기쁨으로 넘치는 웃음을 지닌
그런 인민이 어디 있습니까?"
"신명이 아니고 신명 난 흉내였다. 혁명이 아니고
혁명의 흉내였다. 흥이 아니고 흥이 난 흉내였다.
믿음이 아니고 믿음의 소문뿐이었다.
월북한지 반년이 지난 이듬해 봄, 명준은 호랑이 굴에
스스로 걸어 들어온 저를 저주하면서, 이제 나는
무얼 해야 하나? 하숙집 천장을 노려보고 있다."
"우리 목숨을 주무르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모든 사람이 장삼이사, 그 놈이 그 놈이다.
자기만 별난 줄 알면 못난이 사촌이다.
광장에서 졌을 때 사람은 동굴로 물러가는 것.
그러나 과연 지지 않는 사람이라는 게 이 세상에
있을까.
사람은 한 번은 진다. 다만 얼마나 천하게 지느냐,
얼마나 갸륵하게 지느냐가 갈림길이다."
1961년에 발표된 최인훈 작가의 소설 '광장'은
남북한의 이데올로기 대립을 파헤친 분단문학의
대표작이다.
이데올로기의 갈등 속에서 이상적인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지식인의 고뇌를 그리고 있다.
주인공 이명준은 밀실만 충만하고 광장은 죽어버린
남한에 실망해 월북한다.
그러나 끝없는 복창만을 강요하는 북한 역시 진정한
광장은 없고, 그가 기댈 곳이 아니었다.
남북한 모두의 현실에 실망한 이명준은 사랑하는 여인과
밀실에서의 삶을 모색해 보지만, 그 또한 여의치 않아
이별을 하게 된다.
전쟁이 터지고 인민군 포로가 된 이명준은 포로송환에서
남한도 북한도 아닌 제삼국을 선택해 인도로 가던 중
바다에 투신자살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한다.
소설이 발표된 지 육십 년이 지난 지금도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일부 인사들의 내로남불, 후안무치, 안하무인, 적반하장의
행태와 곳곳에 만연한 부패, 불공정, 편가르기에 실망하고
염증을 느낀 때문일 것이다.
長短家家有 (장단가가유)
炎凉處處同 (염량처처동)
어느 집이나 좋은 점 나쁜 점, 행복과 불행이 다 있고,
어느 곳이나 더위와 서늘함, 권세의 흥망은 다 똑같다.
클래식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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