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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단상

12.3 비상계엄, 천우신조(天佑神助)? 천추(千秋)의 한(恨)?

물아일체 2025. 1. 13. 09:04

하늘이 돕고 신이 돕는다는 의미의 천우신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성사되거나,

어려운 상황에서 극적으로 벗어나는 경우에

흔히 쓰이는 말이다.

 

이에 반해 천추의 한은 천 년을 품을 만큼 가슴에

맺힌 억울하거나 후회되는 일을 뜻한다.

 

천우신조와 천추의 한은 별개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같은 일을 두고 당사자 가운데 한 쪽은

천우신조였다며 고마워하는 반면,

다른 쪽은 천추의 한으로 원망하는 경우도 많다.

 

< 항우와 유방의 鴻門之宴 (홍문지연) >

 

홍문의 연회는 중국의 역사를 바꾼 술자리로,

초한전쟁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이다.

유방이 진나라 수도인 함양에 먼저 입성하자 항우는

대군을 이끌고 함곡관을 단숨에 격파한 뒤 함양에서

멀지 않은 홍문에 주둔했다.

 

초나라 회왕이 함양에 먼저 입성하는 사람을 관중의

왕으로 삼겠다고 약속한 바 있어 항우는 홍문에서

연회를 열고 유방을 불렀다.

 

유방은 당장은 항우에게 맞설 형편이 아니었기에

홍문으로 달려와 굴욕적으로 사죄하는 척 연기를

했다.

 

項莊舞劍 意在沛公 (항장무검 의재패공)

항우의 사촌 동생인 항장이 홍문의 연회에서

칼춤을 춘 것은 유방을 제거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항우는 유방의 비굴하고 아첨하는 말에 속아

유방을 죽이라는 책사 범증의 말을 끝내 듣지 않았고,

유방은 연회 도중에 달아나 버렸다.

 

홍문의 연회에서 유방은 천우신조로 위기를 모면하고

훗날 천하를 얻게 되지만, 항우는 유방을

살려줌으로써 거의 손에 들어온 천하를 놓치는

천추의 한이 되었다.

 

 이 때부터 홍문지연은 생사를 가를 만큼 가슴 졸이는

정치적 담판을 의미하게 되었는데, 2016년 한국의

사드 배치 문제를 둘러싸고 그 홍문지연이 부활했다.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이 "항장무검 의재패공" 고사를

인용하며 "미국이 북핵을 핑계로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는 속뜻은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난한 것이다.

 

이는 미국을 항우에, 중국을 유방에 비유한 것으로,

두 강대국 사이에 낀 한국은 중국의 경제보복을

속절없이 당해야 했다.

 

< 한신과 天下三分之計 (천하삼분지계) >

 

한나라의 명장 한신은 한 고조 유방이 초패왕

항우와의 초한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게 도운

일등공신이다.

그럼에도 한신은 전쟁이 끝나자 토사구팽의 죽임을

당했는데, 한신에게도 천하의 주인이 될 기회는

있었다.

 

책사인 괴통(괴철)이 한신에게 유방으로부터 독립해

항우와 더불어 천하를 셋으로 나눠 다스릴 것을

제안했던 것이다. 제갈량이 유비에게 천하삼분지계를

제시한 것 보다 4백 년이나 앞선 일이다.

 

그러나 소심한 한신이 유방을 배신할 수 없다고

거절하는 바람에 천하삼분지계는 실현되지 못했다.

한신은 죽임을 당하게 된 순간 천하삼분지계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크게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 천추의 한으로 남을 뿐이었다.

 

< 적벽대전과 제갈량의 동남풍 >

 

소설 삼국지의 적벽대전은 오나라 대도독 주유와

촉의 제갈량이 연합해 화공으로 조조의 대군을

물리친 명장면이다.

 

제갈량은 주유에게 자신이 동남풍을 불게 할 테니

사흘 후 공격할 준비를 갖추라고 말한 뒤 제단을 쌓고

기도를 올렸다.

 

이윽고 동남풍이 불기 시작했고, 조조에게 위장

투항한 오나라의 황개 장군은 불붙은 배를 몰아

조조 군대의 배에 충돌시켰다.

 

사슬로 엮여 있던 조조의 배들은 강한 바람을 타고

거세진 불 때문에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때맞춰 주유의 군대가 퇴로를 차단하니 조조의

대군은 크게 패하게 된다.

 

북서풍의 계절인 겨울에 동남풍이 분 것은 촉오

연합군과 제갈량에게 천우신조였다.

물론 그 동남풍이 조조에게는 천추의 한이 되었을

것이다.

 

< 사마의와 제갈량의 상방곡 전투 >

 

황제 유선에게 출사표를 올리고 북벌에 나선 촉의

제갈량은 그 동안 이렇다 할 전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다섯 번째 북벌에 나선 제갈량은 위나라 군대의

군량을 탈취해 촉군의 주둔지인 상방곡에 비축하고

주력인 위연의 부대를 80리 떨어진 기산에

주둔시켰다.

 

위나라 군대를 이끌던 사마의는 촉의 주력부대가

상방곡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방비가 허술할 것이라

판단하고 군량 탈환을 위해 상방곡을 공격했다.

 

하지만 이는 제갈량의 속임수로 제갈량은 군량미처럼

보이는 가마니와 땅속에 유황 염초 같은 인화성

물질을 잔뜩 숨겨 두고 상방곡 입구에 군대를 매복

시켰다.

 

사마의와 위군이 상방곡에 들어서자 촉군의 화공이

시작되고 골짜기는 불바다로 변해 제갈량의 계략이

성공을 거두는 듯 했다.

 

제갈량에게 속았다고 생각한 사마의는 두 아들과

함께 자결을 하려고 칼을 뽑았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하늘에서 소나기가 쏟아져

타오르던 불길이 다 꺼지고 사마의는 남은 군사들과

함께 도주했다.

 

사마의를 놓친 제갈량은 하늘을 향해 절규했다.

謀事在人 成事在天 不可强也

(모사재인 성사재천 불가강야)

일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 일을 성사시키는 것은 하늘이니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로구나!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가 사마의에겐 천우신조였지만

제갈량에게는 천추의 한이 되었다.

더욱이 상방곡 전투에서 크게 낙담한 제갈량이

얼마 후 오장원에서 죽음을 맞게 되니 삼국지를 읽는

많은 독자들도 이 대목을 무척이나 안타까워한다.

 

 우리나라 역사에도 천우신조와 천추의 한이 될만한

일들은 많았다.

정읍 현감이던 이순신이 유성룡의 추천으로

전라좌수사에 임명된 것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불과 일 년 전인 1591년의 일이었다.

 

만일 그때 이순신이 전라좌수사가 되지 않았다면

조선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그야말로

천우신조였다고 하겠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을 한 후 도승지

이경석은 대청황제공덕비 일명 삼전도비의 비문을

써야 했다.

 

이경석은 형에게 보낸 편지에서 글공부를 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된다.”며 비문을 쓴 치욕적인 심정을

전하고 있다.

 

지난 12월 3일, 온 나라를 충격과 혼돈의 도가니에

빠뜨린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도

누군가에게는 천우신조가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천추의 한으로 남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너그러워지면 온 우주를 품을 수도 있지만,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여유가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살면서 기쁘고 좋은 일이 생기면 천우신조라고 여겨

하늘과 주위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자.

그렇지만 억울하고 섭섭한 일은 천추의 한으로

가슴에 담아 두지 말고, 오히려 "모두 내 탓이었다."

하며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로 삼자.

마음이 한결 평온하고 편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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