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서 찾는 삶의 지혜와 즐거움!
고전은 마르지 않는 지혜의 샘, 스토리텔링의 보물창고.

고사성어 25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진혜왕과 진진, 항우의 '일거양득(一擧兩得)'

고대 중국 전국시대 한(韓)나라와 위(魏)나라는 서로 싸운 지 일 년이 넘도록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진(秦)나라 혜왕(惠王)이 이들 나라의 화해를 주선하기 위해 신하들에게 의견을 구하자 어떤 신하는 주선하는 편이 낫다고 하고, 또 어떤 신하는 주선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하였다. 혜왕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었는데, 이때 마침 진진(陳軫)이라는 초나라 사신이 진나라를 방문했다. 이에 혜왕이 진진에게 물었다. "한나라와 위나라의 싸움을 화해시켜야 하겠는가?" 이에 진진이 대답하였다. "옛날에 변장자(卞莊子)라는 힘센 사람이 어느 여관에 머물고 있었는데, 마침 여관 근처에 호랑이 두 마리가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변장사는 당장 호랑이를 잡으러 나가려고 서둘러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자 여관에..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연 소왕과 곽외의 '천금매골(千金買骨)'

중국의 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은 기원전 1세기 한나라의 학자 유향이 고대 중국 전국시대에 활동한 유세가들의 말과 글, 일화 등을 엮어 만든 역사서이다. 기원전 770년, 주나라가 견융족의 침입으로 호경에서 뤄양으로 천도한 때로부터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는 기원전 221년까지의 시대를 중국 역사에서는 춘추전국시대라고 부른다. 여기에 쓰인 '춘추'와 '전국'이라는 명칭은 공자가 엮어 만든 와 유향이 지은 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기원전 314년, 연나라에 내란이 발생하자 이웃한 제나라가 공격해와 땅을 뺐었다. 군주의 자리에 오른 연 소왕은 내란을 평정하고 잃었던 땅을 찾고자 인재를 찾는 공고를 냈다. 그러나 별 성과가 없자 연 소왕은 곽외라는 사람을 불러 인재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곽외는 연 ..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소유자(少孺子)와 장자(莊子)의 '당랑포선(螳螂捕蟬)'

중국 한(漢)나라 때의 학자 한영(韓嬰)이 쓴 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고대 중국 춘추전국시대 오(吳)나라 왕 수몽은 싸움을 무척 좋아하여 자국의 강대한 군사력만 믿고 이웃 나라를 수시로 침략하곤 했다. 그로 인해 오나라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고, 곳간은 비어 나라가 멸망의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도 오왕은 또 다시 인접해 있는 강대국인 초(楚)나라를 침공할 계획을 세웠다. 신하들은 상황이 오나라에 유리할 것이 없다고 판단해 출병을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오왕이 출병을 막는 자는 모두 사형에 처하겠다는 엄명을 내리자 대신들은 감히 나서지 못하였다. 이때 소유자(少孺子)라는 신하가 뜻을 굽히지 않고, 왕의 출병을 막을 방책을 생각했다. 그리고는 매일 아침 일찍 활과 화살을 들고 왕궁 후원에서 옷을 흠뻑..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포청천과 '철면무사(鐵面無私)'

중국 송나라의 수도 카이펑부(開封府, 개봉부)의 부윤이었던 포청천의 본래 이름은 포증(999 - 1062년) 이다. 포증은 공정하고 강직하며 사사로움이 없이 백성들의 억울함에 귀를 기울였기에 백성들은 그가 자신들에게 희망을 주는 푸른 하늘과 같은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포청천(包靑天)이라 불렀다. 포청천은 여러 관직을 역임하면서 일을 공명정대하게 수행하고 추호의 비리도 용납하지 않았으며, 백성들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자기자신에게는 한없이 엄격했던 청백리였다.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권세가들의 탐욕과 비리를 엄하게 다스린 포청천의 일화는 오늘날까지 수많은 소설, 연극, 드라마로 되살아나고 있다. 1994년 국내 TV에서 방영된 대만 드라마 '판관 포청천'에서 그가 던지는 마지막 호령 "개 작두를 대령하라!"는..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조조의 '자가당착(自家撞着)'

서기 198년, 후한 말 건안 3년 때의 일이다, 동탁의 잔당 장수(張繡)가 한나라의 도읍이었던 허도 남쪽 남양지방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황제인 헌제는 승상인 조조가 직접 나서서 그들을 토벌하겠다고 하자 성밖까지 나가서 조조의 군사를 환송했다. 때는 초여름이었다. 조조는 군사를 이끌고 보리가 잘 익은 들판을 지나는데, 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긴 조조가 곁에 있던 책사 곽가에게 물었다. "어째서 농부들이 보리수확을 하지 않는가?" "예, 농부들은 군사작전이 펼쳐지면 군대의 행패가 무서워 모두 달아나버립니다. 그 해악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 말을 들은 조조는 그 지역 노인들에게 사람을 보내 불러 모은 후 술과 고기를 대접하며 그들을 안심시켰다. "나는 황제의 명으로 반..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주나라 선왕과 기성자의 '목계지덕(木鷄之德)'

'장자 달생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기원전 8세기 경, 고대 중국에서는 닭싸움이 성행해 왕부터 서민까지 닭싸움을 즐겼다. 주나라 선왕도 닭싸움을 몹시 좋아해 당대 최고의 싸움닭 조련사인 기성자라는 사람에게 자신의 닭을 맡기면서 최고의 싸움닭으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닭을 맡긴지 열흘이 지나고 왕이 기성자에게 물었다. "닭이 싸우기에 충분한가?" 기성자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닭이 강하긴 하나 교만하여 아직 자신이 최고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 교만을 떨치지 않는 한 최고가 될 수 없습니다." 다시 열흘이 지나서 왕이 묻자 가성자가 대답했다. "아직 멀었습니다. 이제 교만함은 버렸으나 상대방의 소리와 움직임에 너무 쉽게 반응합니다." 또 다시 열흘이 지나 왕이 묻자 기성자가 대답했다...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은(상)나라 탕왕의 '오청이윤(五請伊尹)'

좋은 목수가 좋은 연장을 쓰듯 성공을 꿈꾸는 리더는 유능한 부하를 찾기 위해 노심초사 노력한다. 한나라 때의 역사가 사마천이 쓴 에는 오청이윤(五請伊尹) 고사가 나온다. BC 18 세기경 고대 중국 은(상)나라 시조인 탕왕은 초야에서 농사를 지으며 도를 실천하던 요리사 출신 이윤의 명성을 듣고 그를 신하로 쓰고 싶었다. 탕왕은 네 번씩이나 사람을 보내 이윤의 출사를 청했으나, 이윤은 탕왕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탕왕은 다섯 번째는 자신이 직접 마차를 몰고 이윤에게로 가서 함께 일할 것을 청하기로 했다. 이처럼 탕왕이 직접 마차를 몰고 간 것은 몇 번씩이나 같은 길을 오가며 탕왕의 심무름을 했던 마부가 불평을 하자 혹시나 그가 이윤 앞에서도 불만스런 표정을 보이지 않을까 염려해 마부를 남겨 놓고 ..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한비자와 '제궤의혈(堤潰蟻穴)'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에서 비롯되고, 천하의 큰 일은 반드시 사소한 일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은 쉬운 것에서부터 시작하고, 큰 일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천 길이나 되는 제방도 개미구멍으로 무너지고, 백 척이나 되는 큰 집도 굴뚝 틈새로 새어 나온 작은 불티 하나 때문에 잿더미로 변해버릴 수 있는 것이다." 기원전 3세기 중국 전국시대 법가 사상을 완성한 한비자가 지은 책 에 나오는 내용으로, '천 길이나 되는 제방도 개미구멍으로 무너진다'는 말에서 유래한 '제궤의혈(堤潰蟻穴 제방 제, 무너질 궤, 개미 의, 구멍 혈)'은 '사소한 실수나 부주의로 큰 일을 망치게 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한비자는 '제궤의혈'의 예로 고대 중국 주나라 시대의 전설적인 명의 편작과 ..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삼국지 제갈량의 '아심여칭(我心如秤)'

중국 후한 말 삼국시대 제갈량의 말에서 유래한 '아심여칭(我心如秤 나 아, 마음 심, 같을 여, 저울 칭)'은 나의 마음은 저울과 같다는 뜻으로, 모든 일에 공평무사 해서 사사로운 감정이나 이익을 개입시키지 않고 법대로 처리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제갈량은 뛰어난 지략가이자 정치가로,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상벌을 공정하게 시행한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위, 촉, 오, 삼국 가운데 촉(蜀)의 내부에는 형주 세력, 동주 세력, 익주 세력 등 큰 파벌이 세 개나 존재하면서 내부 갈등이 심화되고 있었다. 더구나 촉의 황제 유비가 이릉 전투에서 오나라 장군 육손에게 대패한 뒤 백제성에서 병사하고, 어린 아들 유선이 그 뒤를 이었지만, 아직 체제가 허약했다. 이런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승상인 제갈량은..

고사성어를 만든 사람들 / 조조와 유비의 '종호귀산(縱虎歸山)'

유비는 여포의 배신으로 근거지인 서주를 빼앗긴 뒤 허창의 조조를 찾아가 의탁하고자 했다. 그러자 조조의 책사 가운데 한 사람인 정욱이 말했다. "유비는 큰 뜻을 지닌 영웅의 기개가 있습니다. 지금 그를 죽이지 않으면 훗날 반드시 화근이 될 것입니다." 반면, 조조의 또 다른 책사인 곽가는 정욱의 말에 반대하며 말했다. "의탁해온 힘없는 유비를 명분도 없이 죽인다면 승상의 명예가 손상되고, 천하에 웃음거리가 되어 훗날 대업을 이루는 데 방해가 될 것입니다." 두 책사의 상반된 진언에 조조는 곽가의 의견을 따라 유비를 기꺼이 맞이하여 환대했다. 이듬해, 원술이 옥새를 가지고 기주의 원소를 찾아가 황제의 자리에 오를 것을 권하려 한다는 소문이 들리자 유비는 이 기회에 조조로부터 벗어날 생각을 하고 조조에게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