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의 관계 개선에 따라 6.25 전쟁 때 북한 지역에서 전사한 미군 유해 상당수가 송환되어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낯선 이국 땅에서 목숨을 잃은 지 60여 년 만에 한 줌 흙으로 자신의 조국,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예전 사람들은 객지를 떠돌더라도 임종 만큼은 고향에서 맞기를 원했고 그것이 어려우면 뼈라도
고향에 묻어 달라 유언을 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명절 때면 고향 가는 길은 도로를 가득 메운 차량들로 평소 보다 두 배는 더 시간이
걸리고 힘이 들지만 사람들은 그 귀성행렬에 동참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수구초심(首丘初心), 여우가 죽을 때면 제가 살던 굴이 있는 언덕 쪽으로 머리를 둔다는 뜻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이르는 말이다. 고향을 그리는 수구초심은 옛날이든 요즘이든,
동양이든 서양이든 마찬가지인가 보다.
美不美 鄕中水, 親不親 故鄕人
(미불미 향중수, 친불친 고향인)
맛이 있고 없음을 떠나 물맛은 고향 물맛이 좋고,
친하고 친하지 않음을 떠나 사람은 고향사람이 좋다.
언제 돌아가도 반겨줄 것만 같은 고향에 대한 친근감은 세월의 흐름에도 변함이 없다.
擧頭望明月, 低頭思故鄕
(거두망명월, 저두사고향)
둥근 달 떠오르면 고개 들어 달을 보고,
고개 숙여 고향 생각에 잠긴다.
이백의 인간적인 면모를 느끼게 하는 시 정야사(靜夜思)의 일부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오래 전부터 많은 시와 노래의 소재가 되어 객지로 나온 사람들의 마음에
위안을 주었다.
금의환향(錦衣還鄕), 사람들은 출세하고 성공해서 고향에 돌아가는 것을 인생의 가장 큰 보람으로
여기기도 했다.
초한전쟁 초기 항우가 진나라의 수도 함양에 입성해 진을 멸망시켰을 때 참모들은 지세가 견고하고
땅이 비옥한 함양을 초나라의 새 수도로 삼고 인근 관중을 발판으로 천하를 도모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항우는 "내가 공을 세웠는데 고향에 돌아가 자랑하지 않으면 비단옷을 입고 밤에
돌아다니는 꼴이 아니고 무엇인가. 비단옷을 입었으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마땅하다."며
부하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함양 궁궐을 불 태우고 금은보화만을 챙겨 초나라의 작은 도읍
팽성으로 돌아갔다.
이 일화에서 금의환향(錦衣還鄕)과 금의야행(錦衣夜行) 고사성어가 유래되기도 했다.
이처럼 항우가 관중을 차지하고도 그 이점을 활용하지 않고 포기함에 따라 얼마 후에는
경쟁자인 한나라 유방이 관중을 차지해 버렸다. 함양과 팽성의 전략적 가치 판단은 다를 수 있지만,
고향인 팽성으로 금의환향 하고 싶어했던 항우의 인간적인 마음만은 탓할 수 없을 것 같다.
고향으로 돌아 온다는 의미의 환향(還鄕)과 관련해서는 우리 역사의 아픈 기억도 있다.
조선 인조시대 청나라의 침입에 속수무책으로 항복한 병자호란의 결과 많은 백성들이 포로가 되어
고향을 떠나야 했다.
다행히 몸 값을 지불하거나 이런저런 수단을 써 고향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처럼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 가운데 특히 여자들을 일러 환향녀(還鄕女)라고 부르며 마치
정조를 져버린 여자인양 멸시하는 풍조가 있었다.
小時是兄弟 長大各鄕里
(소시시형제, 장대각향리)
어릴 때는 형제가 한 집에서 우애를 키우며 살지만,
성장한 뒤에는 자기 앞가림하기에 바빠 뿔뿔이 흩어져 지낸다.
은퇴 후 여유로운 시골생활을 꿈꾸며 귀향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런데 고향을 찾은 사람 가운데 일부는 그동안 고향을 지키며 살아온 토박이들과 갈등을 겪기도
하는 모양이다.
오랜 세월에 시골의 인심도 많이 변하고 각박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자신은 수십 년간
도시생활에 적응하며 그 혜택을 누려왔으면서도 고향과 고향사람, 고향인심은 변함없이
옛날 그대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은 이기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귀향에 앞서 그들의 사고와 생활방식을 이해하고 적응하려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산업화의 영향으로 이제는 옛날같이 정감 있는 고향은 사라졌고, 遠親不如近隣(원친불여근린),
멀리 있는 친척이 가까운 이웃이나 친구만 못한 것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태어난 곳과 자란 곳, 지금 사는 곳이 다르다 보니 어디를 고향이라 해야 할지 애매한 경우도 있다.
어쩌면 우리 7080세대가 이은상의 '가고파'나 정지용의 '향수'에서 부모님의 인자한 모습과 함께
옛 고향집을 아련하게 떠 올리는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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