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서 복숭아는 불로불사의 신비한 과일로 여겨져 신화나 시, 소설,
그림 등의 소재로 자주 등장해 왔다.
'도화동'이라는 지명이나 '고향의 봄' 같은 노래의 가사를 보면 예전에는
우리 주변에서 복숭아나무를 쉽게 접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桃李不言 下自成蹊
(도이불언 하자성혜)
복숭아 자두는 말이 없지만 그 꽃과 열매를 보고 사람들이 찾아 와 길이 나듯
인격자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말로 복숭아나무를 인격자에 비유하고 있다.
삼국지 도입부에 나오는 유비, 관우, 조조의 '도원결의', 도연명이 이상향 무릉도원을
노래한 '도화원기', 안평대군이 꿈에 본 절경을 그렸다는 안견의 '몽유도원도' 등은
모두가 복숭아밭이 배경이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신화집 산해경에는 곤륜산에 산다는 생명과 죽음을 관장하는
최고의 여신 '서왕모'와 그녀의 복숭아밭 '반도원'이 나온다.
반도원 복숭아는 적어도 삼천 년이 넘어야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며, 하나를 먹으면
육천 년을 산다고 하는데, 삼천 갑자 동방삭이 그렇게 오래 산 것이나 손오공이
오백 년 동안 오행산에 갇혀 벌을 받은 것은 반도원 복숭아를 훔쳐 먹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좋은 과일인 복숭아도 제사상에는 올리지 않는데, 이와 관련된 전설이 있다
고대 중국 신화에 예(羿)라는 명궁이 있었다.
예는 천제의 명령으로 열 개의 해가 떠서 고통을 받고 있는 인간세계로 내려와
아홉 개의 해를 활로 쏘아 떨어뜨리고 한 개의 해만 남겨 놓았다.
이에 예는 인간세계를 구한 영웅으로 극진한 대접을 받게 되었다.
예는 자신의 활 솜씨를 제자 봉몽에게 전수해 줬는데, 봉몽은 예가 없으면
자신이 최고가 된다는 생각에 복숭아나무 몽둥이로 예를 때려 죽였다.
그러자 천제는 죽은 예를 불쌍히 여겨 그를 귀신들의 우두머리로 삼았고,
예가 복숭아나무에 맞아 죽었기 때문에 다른 귀신들도 복숭아나무를
무서워하게 되었다.
이런 연유로 제사상에 복숭아를 올리지 않고, 집 안에 복숭아나무를 심지 않는
풍속이 생겨 났다.
서양에서는 복숭아 보다 사과가 여러 분야에서 눈에 띠는 친숙한 과일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자식이라는 우리 말처럼 서양에서는
소중한 사람이나 물건을 사과에 비유해 "apple of someone's eye,
눈 안의 사과"라고 표현하고 있다. 사과는 여러 명화에도 등장하는데,
폴 세잔은 사과 그림을 많이 그린 대표적 화가이다.
흥미로운 것은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양문화를 몇 개의 사과를 잇는 역사의
진행과정에서 살펴 보는 일이다.
창세기의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먹은 사과는 선과 악을 구분하고,
신과 인간을 구분한 최초의 사과였다.
헤라, 아프로디테, 아테나 등 세 명의 여신에게 불화를 일으켜 트로이전쟁을
촉발 한 파리스의 사과는 호머의 대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으며, 서양문명의 모태인 그리스 문명과 연결된다.
중세기 빌헬름 텔의 사과는 정의와 진리를 상징하며 정치사상의 발전에
기여했고,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에 암시를 준 사과는 근대 과학지식
발전의 동력이 되었다.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했고, 스티브 잡스의 애플은
스마트폰을 통해 사람들의 손 안에서 정보통신 혁명을 실현해 가고 있다.
복숭아와 사과, 두 과일을 동양과 서양으로 나누어 연관 지을 어떤 객관적
근거는 물론 없다.
그러나 옛 설화나 역사를 살펴보면 복숭아와 사과가 각기 동,서양의 특색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체로 동양의 복숭아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신화적 감성적 몽환적인 반면,
서양의 사과는 좀 더 이성적 과학적 분석적 성격을 띠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 역시 동양문화와 서양문화의 특징과도 맥이 통하는 것 같다고 하면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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