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문은 치열했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다.
재치와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문장,
조금은 엉뚱한 글귀의 묘비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가치관이나 인생을 함축한 묘비문도
눈에 띈다.
다양하게 표현된 명사들의 묘비문을 통해
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와 그들의 삶을 살펴 본다.
< 여보게, 자네가 누구든 그리고 어디서 왔건
나는 자네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네.
나는 페르시아 제국을 건국한 키루스라네.
나의 뼈를 감싸고 있는 이 한 줌의 흙을
비웃지 말게나.
아무리 제왕이라도 결국 죽을 때는
빈 손으로 가기 마련이지.
나 또한 여기서 빈 손으로 가고,
이렇게 작은 쉼터에서 쉬고 싶을 뿐.
이름 모를 제왕이여,
그대는 나의 잠을 깨우지 말게나.
빈 손으로 가는데 화려한 보물이 뭐 하러
필요하겠는가?
어차피 그대도 빈 손으로 가게 될 것이니. >
기원전 5세기,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시아를 침공했을 때, 수도인 파사르가다에
근처에서 보았다는 키루스 2세의 묘비문이다.
키루스 2세는 기원전 6세기경 메디아, 리디아,
신바빌로니아를 격파하고, 조그만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를 인류 역사상 최초의 대제국으로 키웠다.
오늘날 이란인들은 그를 키루스 대왕이라 부르며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하고 있다.
키루스 왕은 여러 이민족을 정복한 후에도 그들의
종교와 언어를 인정하는 관용정책과 노예제도를
금지하는 포용정책을 기조로 제국을 유화적으로
다스렸다.
특히, 키루스 왕은 신바빌로니아를 정복한 뒤
유다에서 바빌론으로 끌려와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고 있던 이른바 '바빌론 유수'의 히브리인들을
예루살렘으로 귀환시켜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허락했다.
유대인들은 키루스 왕이 이처럼 자신들을 도와준
것에 감격해 그를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즉,
'메시아'라고 칭송하며 구약성경에 '고레스'라는
이름으로 기록하였다. (에스라 1 : 1 - 3)
이민족의 지도자로서 유대인에게 칭송을 받고,
구약성경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키루스 왕이
유일하다.
키루스 왕의 리더십은 적국이었던 고대 그리스에서도
칭송을 받았으며, 아테네 철학자 크세노폰은 자신이
쓴 '키루스의 교육' 책자에서 키루스 왕을 이상적인
군주로 제시하기도 했다.
또한, '군주론'을 쓴 이탈리아의 마키아벨리는
키루스 2세가 운이 아닌 실력으로 군주가 된 대표적
인물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키루스 2세의 무덤은 그가 자신의 무덤을 검소하게
만들라고 유언해서였는지 당대 다른 왕들의 무덤에
비하면 규모가 매우 작아, 키루스 2세가 죽은 뒤
약 200년 후 페르시아를 침공한 알렉산드로스는
"이것이 전설적인 키루스 2세의 무덤이란 말인가?
이리도 초라한 무덤이..."라며 믿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 Boney M의 'Rivers of Babylon'과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중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바빌론으로 끌려와 포로생활을 하던 히브리인들의
회포와 예루살렘에 대한 향수를 노래한 곡이다.
Boney M의 'Rivers of Babylon'
https://www.youtube.com/watch?v=UB4OKEYqCCc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중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https://www.youtube.com/watch?v=ntflUU_xmqY
'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 작곡가 윤이상 (0) | 2024.03.04 |
---|---|
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 교육의 아버지 페스탈로치 (0) | 2024.02.19 |
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 소설 '테스'의 작가 토마스 하디 (2) | 2024.02.05 |
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 루이 15세의 정부(情婦) 퐁파두르 부인 (0) | 2024.01.22 |
묘비문을 통해 본 명사들의 삶 / '세월이 가면',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 (5) | 2024.0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