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으로 얼마 동안 고통의 시간을 보내던 친구가 저 언덕 너머
피안의 세계로 갔다.
哀而不傷
(애이불상)
먼저 간 친구의 죽음 앞에 가슴 아파함은 인지상정이지만
슬픔이 지나쳐 몸을 상하게 하거나, 시나브로 우리 곁에 다가 온
삶과 죽음의 불분명한 경계에 불안해 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슬픔을 치유하는데 시간 만큼 좋은 약은 없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상처는 꾸덕꾸덕 아물고 새 살이
돋을 것이다.
色卽是空 空卽是色
(색즉시공 공즉시색)
색은 곧 공이며, 공은 곧 색이다.
유형이 곧 무형이고, 무형이 곧 유형이니 무한한 우주 순환의
질서 속에서 굳이 살았다 죽었다 구분하는 것도 별 의미가
없다.
죽음은 삶을 마감하는 벽인 동시에 영원한 안식의 문이다.
무대 위의 공연이 아무리 즐거워도 시간이 되면 무대의 막은
내려진다.
극장의 불이 꺼지고 관객이 떠나고 나면 연기를 마친 배우들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떤 삶의 여정에도 종착역은 있다.
사람마다 종착역은 다르지만 자신의 종착역이 가까워지면
여정을 마무리 할 준비를 해야 한다.
죽음을 마음 속으로 받아 들이면 우리의 삶은 바뀐다.
자신의 삶에 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자신의 시간들이
더 없이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껴질 것이다.
죽음 앞에 권세와 영화, 시비와 다툼은 부질없다.
가족과 친구, 사랑과 배려, 용서 같은 지극히 평범하고 보편적인
가치들에 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될 것이다.
고대 로마에서는 전쟁에 승리하고 개선하는 장군에게 노예들로
하여금 "메멘토 모리!"를 외치게 했다.
중세의 수도사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메멘토 모리!" 라고 인사를
나누며 하루를 시작했다.
승리의 교만함과 일상의 안일함에 빠질 수 있는 그 순간 죽음의
기억을 떠올려 더욱 겸손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려 노력한
것이다.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어 왔고 지금도 머물고 있다.
이제 죽음에 대한 기억을 통해 주변의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
화해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피할 수 없어 당하는 죽음이 아니라 감사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는 그런 죽음이어야 한다.
"메멘토 모리!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어쩌면 먼저 떠난 친구가 남기고 간 무언의 메시지인지도
모르겠다.
클래식 클래스
클림트의 '삶과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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