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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단상

부(富), 돈의 위력과 속성

물아일체 2018. 6. 6. 22:47

한 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자조적인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나타난 부와 권력의 유착,

부익부 빈익빈에 따른 경제적 불평등, 국민정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사법제도에 대한 불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만들어 낸 사회적 현상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월나라 범려는 와신상담

고사에서 보여 주듯 월왕 구천을 도와 오나라 부차를

멸하고 그 공을 크게 인정받았지만,

토사구팽의 위험 때문에 모든 기득권을 포기한 채

제나라로 도망쳤다.

범려는 이름도 주공(朱公)으로 바꾸고 장사를 해 당대

최고의 부자가 되었으며 ‘상신(商神)’, ‘재신(財神)’의

경지에 까지 이르렀다.

 

"천금지자불사어시(千金之子不死於市),

천금을 가진 부잣집 자식은 죽을 죄를 지었어도

저잣거리에서 처형을 당하지 않으며,

도덕은 생활의 여유가 있을 때 꽃이 핀다"고 했던 

범려의 말에서 돈의 위력과 속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범려는 비록 장남의 어리석은 실수 탓에 초나라에서

처형을 당하게 된 자신의 다른 아들을 구하는 일에는

실패했지만, 돈을 아낄 때와 쓸 때를 아는 것이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고대 중국에는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이 속전 50만전을

내거나 궁형(거세형)을 자청하면 사형을 면제해 주는

제도가 있었다.

 

흉노 정벌에 나섰다가 투항한 이릉 장군 변호사건으로

한나라 무제의 미움을 사 억울하게 사형이 확정된

사마천은 돈을 구할 수 없어 치욕적인 궁형을 당했다.

 

사마천은 돈을 빌려 주지 않고 외면한 지인들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간직한 채 중국 최고의 역사서 사기(史記)

130권을 완성하는 불멸의 업적을 이루었다.

 

사기가 다른 역사서와 달리 화식열전 등 부와 장사꾼에

관한 내용을 많이 포함한 것이나,

"천하 사람들은 모두 이익을 위해 기꺼이 모여들고,

또 이익을 위해 분연히 떠난다”는 글이 들어간 것은

돈에 대한 사마천의 아픈 경험도 영향을 미쳣을 것이다.

 

義盡從貧處斷 (인의진종빈처단)

世情偏向有錢家 (세정편향유전가)

사람이 마음을 다해 모셔도 가난하면 발길이

끊어지고, 세상의 인심은 돈 많은 곳으로 향한다.

 

貧居鬧市無相識 (빈거료시무상식)

富住深山有遠親 (부주심산유원친)

가난하면 번잡한 시장통에 살고 있어도

아는 척하는 이가 없고,

부유하면 깊은 산 속에 살아도 멀리서

찾아오는 친척이 있다.

 

흥하는 집안의 자식은 똥도 돈처럼 아끼지만,

망하는 집안의 자식은 돈도 똥 취급을 한다.

成家之兒 惜糞如金, 敗家之兒 用金如糞

(성가지아 석분여금, 패가지아 용금여분)

 

부자가 되기 위해 돈을 버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큰 부자는 하늘이 낸다고 할지라도 작은 부자는

부지런함으로 이룰 수 있다.

大富由命, 小富由勤 (대부유명, 소부유근)

 

不積小流 無以成江海 (부적소류 무이성강해)

조그만 물줄기가 모이지 않으면 강과 바다를

이룰 수 없다.

 

시대와 환경이 바뀌어도 열심히 일하고 번 돈을

아껴 저축하는 일이 부자가 되는 첫 걸음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인간의 욕망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부와 권력일 것이다

부와 권력은 어떤 때는 유착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갈등을  빚기도 한다.

예전에는 권력을 잡으면 돈도 당연히 따라 오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권력자가 그 권력을 이용해

부까지 거머쥐려 하다가 사단이 난 경우도 적지 않다.

 

의 위력과 속성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처음에는 이러저러한 죄목으로 엄중한 처벌을

받을 것 같았던 권력자들이나 기업인들이 결국에는

가벼운 형을 받거나 사면을 통해 쉽게 풀려 나오기도

한다.

범려와 사마천이 이 시대에 살아 있다면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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