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초의 통일제국 진(秦)나라는 시황제가 죽은 뒤,
진승 오광의 난을 계기로 진나라의 포악한 정치에
항거하는 반란이 도처에서 우후죽순처럼 일어났다.
항우는 숙부 항량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초나라를
세우고 회왕을 옹립했는데, 회왕은 진나라의 수도인
함양에 먼저 입성하는 사람을 관중의 왕으로 삼겠다고
했다.
항우가 거록에서 진나라 군대와 맞서 격전을 벌이고
있을 때 유방은 군대를 이끌고 관중을 향해 나아갔고,
항우에 앞서 함양에 입성하게 되었다.
유방은 궁 안에 있는 엄청난 재물과 미녀들에 대한
유혹을 떨치기 어려웠지만, 번쾌와 장량의 조언을
받아들여 궁궐을 온전히 보존한 채 함양에서 군대를
철수해 인근 패상에 주둔했다.
한편, 거록에서 진나라 군대를 크게 무찌른 항우는
서둘러 관중으로 향했다.
그러나 항우가 관중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유방이
함양에 입성한 상태라 항우의 분노는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유방 또한 자신이 관중의 왕이 되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아직은 세력이 절대적으로 불리함을 깨닫고
우선 살아남기 위해 홍문의 연회에서 굴욕을 무릅쓰고
관중 땅을 항우에게 바쳤다.
유방으로부터 함양을 접수한 항우는 대군을 이끌고
함양궁에 입성했고, 유방 보다 늦게 입성한 것을
분풀이라도 하듯 닥치는 대로 약탈하고 파괴하고
불태웠다.
사치와 호화로움의 대명사였던 아방궁도 이때 불타
없어졌는데, 불은 석 달 동안이나 지속되었다고 한다.
며칠 후 항우는 함양의 재화와 보물 그리고 여자들을
거두어 팽성으로 돌아가려 했다.
이때 한생(韓生)이라는 유생이 나서 "관중은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요새인 데다 땅도 비옥하므로
도읍으로 정한다면 패왕이 될 것입니다."라고 건의했다.
그러나 항우는 "부유하고 귀해졌는데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옷을 입고 밤에 길을 가는 것(금의야행,
錦衣夜行)과 같으니 누가 그것을 알아주겠는가!"하며
한생의 말을 무시해 버렸다.
한생은 탄식하며 물러나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사람들이 초나라 사람은 목욕을 한 원숭이가
사람 모자를 쓴 것 뿐이라고 하더니 과연 그렇구나!"
그런데 이 말을 항우가 듣고 말았다.
항우는 곁에 있던 책사 진평에게 "방금 한생이 한 말이
무슨 뜻인가?" 물었다.
이에 진평은 "원숭이는 관을 써도 사람이 될 수
없으며, 평소 신중함이 부족해 관을 쓰면 조바심을
내고, 원숭이는 사람이 아니므로 관을 만지작거리다가
의관을 찢어버리고 만다는 뜻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진평의 말을 듣고 진노한 항우는 한생을 끓는 기름
가마에 던져 삶아 죽이고 말았다.
함양은 주나라와 진나라가 일어났던 패업의 땅으로,
관중이라고도 불리는 천혜의 요지이다.
호경, 함양, 장안, 서안 등으로 불리며 중국 역사에서
여러 왕조가 도읍으로 정했던 곳인 만큼 지리적으로
이점이 많은 곳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성공을 고향에서 뽐내고 싶어
팽성으로 돌아간 항우의 행동은 전략적 사고 능력의
부족이라는 한계를 보여준다.
항우는 이처럼 고집이 세고 남의 말을 듣지 않으며,
불같이 화를 잘 내는 성격이라 주변에 인재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결국에는 거의 손에 들어왔던
천하를 유방에게 빼앗기고 서른한 살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이 일화에 나오는 한생이 항우의 어리석음을 꼬집은
말에서 유래된 '목후이관(沐猴而冠)'은 '목욕을 한
원숭이가 관을 썼다'는 뜻으로, 외양은 갖추었으나
생각이나 행동이 사람답지 못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요즈음 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일부 정치인들의
몰염치하고 안하무인격의 말과 행동은 '목후이관'
고사성어가 저절로 떠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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