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앞에는 한 목표, 오직 하나뿐인 목표가
있었으니, 그것은 모든 것을 비우는 일이었다.
갈증으로부터 벗어나고, 소원으로부터 벗어나고,
기쁨과 번뇌로부터 벗어나 자기를 비우는 일이었다.
자기 자신을 멸각시키는 것, 자아로부터 벗어나
이제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닌 상태로 되는 것,
마음을 텅 비움 상태에서 평정함을 얻는 것,
자기를 초탈하는 사색을 하는 가운데 경이로움에
마음을 열어놓는 것, 이것이 그의 목표였다."
"해탈은 스스로의 구도행위로부터 얻어지는 것이지
누군가의 가르침을 통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한테서 배울 것이며, 나 자신의 제자가
될 것이며, 나 자신의 비밀을 알아내야지."
"남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을 가르쳐 준 것은
강이었어요.
우리는 강으로부터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지요.
보세요. 당신도 이미 강물로부터 아래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 가라앉는 것, 깊이를 추구하는 것이
좋은 일이란 것을 배웠어요."
"그는 강으로부터 끊임없이 배웠다.
무엇보다 듣는 법을, 조용한 마음으로, 영혼을 열고
기다리는 마음으로, 열정도, 욕망도, 비판도, 의견도
없이 귀를 기울여 듣는 법을 배웠다.”
"강물은 어디서나 동시에 존재하지만
강에는 현재만 있을 뿐, 과거나 미래의 그림자가
없어요."
모든 것은 현존하는 것.
모든 것은 본질과 현재를 지니고 있어요.
일체의 번뇌의 근원이 시간이지요."
"사람의 눈은 오로지 자기가 구하는 것만을 보게 되어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으며, 자기 내면에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가 생기기 쉽지요.
그 목표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까닭이지요.
목표에 급급한 나머지 당신의 눈 앞에 있는 많은 것을
보지 못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지식은 전달할 수가 있지만,
지혜는 전달할 수 없는 법이야
지혜를 체험할 수도 있고
지혜를 지니고 다닐 수도 있고
지혜로 기적을 행할 수도 있지만
지혜는 말하고 가르칠 수 없네."
"이 세계는 매 순간순간 완성된 상태에 있으며
온갖 죄업은 이미 그 자체에 자비를 지니고 있으며
어린애들은 모두가 내면에 백발의 노인을 지니고
있으며, 젖먹이도 내면에 죽음을 지니고 있고
죽어가는 사람도 내면에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지."
"말이란 신비로운 참 뜻을 훼손해 버리는 법일세.
일단 말로 표현하게 되면 그 즉시 본래의 참 뜻이
약간 달라져 버리게 되고, 약간의 불순물이 섞여
변조되어 버리고, 약간 어리석게 되어버린다.
가르침은 말로 이루어져 있다.
아무런 색도, 냄새도, 맛도, 단단함과 부드러움도
가지고 있지 않다."
"나에게는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것,
업신여기지 않는 것,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과 외경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것, 오직 이것만이 중요할 뿐이야."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는 싯다르타라는 한 젊은이가
방황 끝에 깨달음에 이르는 종교적 성장소설로,
읽는 이의 정신을 맑게 해주는 소설이다.
소설에서는 깨달음에 이른 붓다인 '고타마'와 깨달음을
추구하는 '싯다르타'가 서로 다른 인물로 등장한다.
싯다르타는 브라만의 아들로, 성인들의 열반을 동경하며
더 많은 것을 배우고자 집을 나와 사문 생활과 환속에
따르는 방황의 과정을 거친 끝에 강을 통하여 세상의
이치와 진정한 자아를 찾게 된다..
소설 <싯다르타>는 구원과 완성의 삶에 이르기 위해서는
깨달음을 얻은 부처를 무조건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삶의 방향을 모색하여 자기만의 길을 찾아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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