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비문은 치열했던 한 인간의 삶의 기록이다.
재치와 유머가 담긴 촌철살인의 문장,
조금은 엉뚱한 글귀의 묘비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인생을 함축한 묘비문도 눈에 띈다.
다양하게 표현된 명사들의 묘비문을 통해
그들이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했던
메시지와 그들의 삶을 살펴 본다.
"나는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이 세상에 나왔다가
어머니의 심부름을 다 마치고 어머니에게 갑니다."
인간의 존재와 고독을 평이하고 자연스런 언어로
표현했던 조병화(1921 - 2003년) 시인의 묘비문이다.
묘비문에서 조병화 시인은 자신의 전 생애를 ‘어머니
심부름’으로 규정하고 있다.
조병화 시인에게 어머니는 삶의 시작점이자 도착점이었다.
그는 생전에 자신은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이 세상에
나왔다는 말을 종종 했다고 한다.
심부름을 하는 존재이기에 심부름이 끝나면 그 심부름을
시킨 사람에게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육신의 생명을 준 존재이며,
자식은 어머니로부터 무한의 아가페적 사랑을 받으며
성장한다.
조병화 시인의 어머니 진종 여사는 아들에게 꿈을 갖고
부지런하게 살 것을 가르쳤고, 아들은 평생 그 가르침을
실천하였다.
그가 평생 동안 총 160여 권의 저서를 출간한 것만
보아도 얼마나 부지런한 삶을 살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조병화 시인은 경기도 안성 출생으로, 경성사범을
졸업한 뒤 일본 동경고등사범으로 유학 길을 떠나
그곳에서 물리와 화학을 전공했다.
자연과학을 전공했다는 그의 이력이 이채롭다.
시인으로선 드물게 격렬한 럭비선수 생활을 하기도
했으며, 그림과 조각 등 화가로서의 재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는 1949년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으로 등단한 뒤
일생 동안 무려 53권의 시집을 발간했다.
시집 발간 분량으로는 한국의 시인 중 단연 으뜸이다.
조병화 시인은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했고 인복도
많은 편이었다고 한다.
부모가 운수업을 해서 여러 운전기사를 고용하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화물차를 운전하는 조중훈이라는
성실한 청년이 있었고, 그는 훗날 한진그룹 총수가
되었다.
그런 인연은 조병화 시인이 한진그룹이 설립한
인하대학교에서 오랫동안 교수로 재직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96년에 발표한 조병화의 시 ‘나의 생애’에는
그가 살아온 삶이 담겨 있다.
"럭비는 나의 청춘
시는 나의 철학
그림은 나의 위안
어머니는 나의 고향
나의 종교
나는 어머니에서 태어나와
어머니로 돌아가고
그 길을
한결같이 살아왔을 뿐
그것이 그렇게도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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