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신상담(臥薪嘗膽), 오월동주(吳越同舟) 같은
고사성어의 유래가 되기도 했던 오나라와 월나라의
복수혈전은 고대 중국에서 춘추시대가 막을 내리고
전국시대가 열리는 분수령이다.
이 시기에 등장하는 서시(西施)는 월왕 구천에 의해
오왕 부차에게 미인계로 보내져 오나라가 망하는데
일조한 여인으로, 아름다운 용모를 바탕으로 한
여러 고사성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미녀 서시는 가슴앓이가 있어 가끔씩 통증을 느끼곤
했는데, 이 때 손을 가슴에 대고 얼굴을 찌푸리는
그녀의 모습 조차도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고 한다.
서시의 이런 행동을 본 추녀 동시(東施)는 자신도
그렇게 하면 조금이라도 예뻐 보일 수 있을까 해서
흉내를 냈지만 동시의 못난 얼굴은 더욱 추해 보일
뿐이었다.
이처럼 못생긴 동시가 아름다운 서시의 외모나 행동을
따라 해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서시봉심(西施捧心)과
동시효빈(東施效矉), 서시빈목(西施矉目) 등의
고사성어는 옳고 그름의 판단 없이 남의 흉내를 내는
것을 빗댄 말이다.
서시는 왕소군, 초선, 양귀비와 더불어 중국 4대 미녀로
일컬어지는 기원전 5세기의 여인이다.
서시가 개울에서 빨래를 할 때 물고기가 그녀의 미모에
넋을 잃고 헤엄치는 것을 잊어 개울바닥으로 가라앉았다
하여 그녀에게는 침어(沈魚)라는 별명이 생겼다고
하는데, 중국인 특유의 과장법이 재미있다.
평범한 집안에서 가사일이나 하던 서시가 월나라의
숙적인 오나라로 보내지게 된 것은 와신상담 스토리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춘추시대 말기 여러 제후국들이 패권을 다투고
있었는데, 그들 중에도 특히 극심하게 대립하며 서로를
원수로 여겼던 나라가 바로 오나라와 월나라였다.
오왕 합려는 월나라를 공격하다 부상을 입어 세상을
떠났다.
합려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부차는 매일 밤
섶나무 위에서 잠을 자며 아버지를 죽인 월나라에 대한
복수를 다짐했으니, 이 상황을 '와신(臥薪)'이라 한다.
오나라의 이러한 움직임을 알게 된 월왕 구천은
책사 범려의 말을 무시하고 오나라를 선제 공격했다가
크게 패했고, 구천은 부차에게 항복을 하고 말았다.
당시 오왕 부차의 신하였던 오자서는 월왕 구천을 죽여
후환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월나라에서 많은
뇌물을 받은 재상 백비가 구천을 두둔하는 바람에
부차는 구천을 살려주었다.
그 대신에 오나라로 끌려온 월왕 구천은 여러 해 동안
합려의 묘를 돌보고, 부차의 마굿간을 청소하는 등
궂은 일을 해야 했다.
월왕 구천은 오왕 부차가 병이 나자 부차의 똥을
손가락으로 찍어 그 맛을 보며 병의 증세를 진단해
주는 행동까지 함으로써 부차의 신뢰를 얻으려
노력했는데, 여기서 상분득신(嘗糞得信)이라는
고사성어가 유래하기도 했다.
구천은 3년간에 걸친 오나라에서의 치욕적인
노비 생활 끝에 드디어 월나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월나라로 돌아온 구천은 오왕 부차를 안심시키기 위해
꾸준히 금은보화를 예물로 바치는 한편, 자신의 처소에
쓸개를 걸어두고 수시로 그것을 핥으면서 복수를
준비했으니, 이를 '상담(嘗膽)'이라고 부른다.
서시가 오월쟁패에 등장하게 되는 것은 이 시점이다.
월왕 구천의 책사 범려는 미녀 서시를 발굴해 다양한
기예와 남자를 유혹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방법 등을
철저하게 교육시켰다.
이런 과정을 거쳐 오왕 부차에게 보내진 서시는
고도로 훈련된 역사상 최초의 미녀 간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의 주된 임무는 오나라의 국력을 약화시키고,
오왕 부차와 그의 신하 오자서의 사이를 이간하는
것이었다.
서시는 뛰어난 미모와 철저한 훈련을 통해 갖춘
지성을 바탕으로 오왕 부차의 총애를 받는 후궁이
되어 부차의 명예욕과 허영심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서시의 부추김에 고무된 부차는 궁궐 신축 등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이는 한편, 수시로 이웃나라와
전쟁을 벌였다.
이로 인해 오나라의 재정과 국력은 약화되어 갔고,
오왕 부차와 사이가 벌어진 오자서는 자결하게 된다.
오자서가 죽은 후 치밀하고도 은밀하게 복수 준비를
마친 월왕 구천은 마침내 오나라를 공격해 오왕 부차를
자살하게 만들었고, 오나라는 완전히 멸망했다.
이로써 월왕 구천과 그의 책사 범려가 기획한
미녀 간첩 서시를 이용한 미인계는 성공을 거두며
와신상담의 스토리는 막을 내리게 된다.
오나라가 멸망하고 오왕 부차가 죽은 뒤, 서시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설이 나뉜다.
오왕 부차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낀 서시도 자살했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오나라 백성들이 서시를 붙잡아
장강에 빠뜨려 죽였다는 설도 있다.
또한, 서시를 발굴해 오왕 부차에게 바쳤던 범려의
부인이 되어 함께 제나라로 도망가서 안락한 여생을
보냈다는 해피엔딩설도 있지만,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알 수가 없다.
중국의 역사를 보면 오왕 부차와 서시의 경우처럼
망한 왕조의 군주에게는 미녀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하나라 걸왕과 말희, 은(상)나라 주왕과 달기,
서주의 유왕과 포사, 오왕 부차와 서시의 경우가
그러하다.
물론, 서시를 오왕 부차의 인생을 망쳐버린 팜므
파탈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부차가 섶나무 위에서 잠을 자며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 했던 초심을 잃지 않았다면 그의
불행한 종말은 없었을 것이다.
부차는 서시를 탓하기 전에 자신의 잘못을 먼저
반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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