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신 케피소스와 님프 리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난
나르키소스는 매우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나르키소스가 태어났을 때 예언자는 그의 운명에 대해
"자기 자신을 모르면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했지만, 아무도 그 말의 뜻을 알지 못했다.
나르키소스가 성장하자 그의 아름다운 외모에 반한
많은 젊은이들과 님프들이 사랑을 속삭이며 다가왔다.
그러나 나르키소스는 자만심이 강하고 거만해 그들을
차갑게 대하며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다.
이 때문에 나르키소스 주변에는 사랑을 거절당한 뒤
자살하거나 병에 걸려 죽는 젊은이들과 님프들이
생겨났는데, 그 가운에 특히 에코의 사랑 이야기는
애절하다.
에코는 헬리콘 산 속에 사는 님프인데, 수다 떠는 걸
좋아해서 한 번 말을 시작하면 멈출 줄을 몰랐다.
어느 날 제우스가 헬리콘 산으로 가는 것을 본
부인 헤라는 남편 제우스가 혹시 숲의 님프들과
바람을 피우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어 몰래
제우스를 미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에코가 헤라에게 다가와서 계속 말을 거는
바람에 그만 남편 제우스를 놓치고 말았다.
그 덕분에 제우스는 아내인 헤라에게 들키지 않고
숲의 님프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에코의 수다 때문에 남편의 불륜 현장을 놓친 헤라는
화가 나서 에코에게 앞으로는 남이 말하기 전에는
절대로 먼저 입을 열 수 없으며, 그녀가 들은 마지막
음절만을 되풀이해야 하는 벌을 내렸다.
(영국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그림
'에코와 나르키소스')
하루는 숲으로 사슴 사냥을 나갔던 나르키소스가
일행과 떨어져 숲 속을 헤매게 되었는데, 그를 본
에코가 첫눈에 반하고 말았다.
에코는 나르키소스에게 달콤한 사랑의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헤라 여신으로부터 받은 벌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고, 나르키소스가 뭐라고 한 마디 하면 그 말의
끝부분만을 따라 할 뿐이었다.
나르키소스는 에코의 그런 이상한 행동을 보고는
더 이상 상대하지 않고 떠나버렸다
에코는 부끄러움에 깊은 동굴 속에 숨어서
나날이 여위어가다가 바위로 변했고, 목소리만 남아
숲 속을 오가는 사람들이 하는 말의 끝부분만을
따라 하는 메아리로 남게 되었다.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의 그림 '나르키소스')
그 후 나르키소스는 어느 날 사냥 도중에 목이 말라
샘물로 다가갔다.
몸을 숙여 물을 마시려고 할 때 나르키소스는 샘물에
비친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는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나르키소스는 그것이 자신의 모습인줄은 모르고
샘에 살고 있는 요정이라고 생각해 물속의 그 얼굴에
키스하려 했지만 입술을 대면 곧 얼굴이 사라지고
말았다. 손을 뻗어 쓰다듬으려 해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나르키소스는 자꾸 피하기만 하는 물속의 모습에
애를 태우다가 에코처럼 야위어서 죽고 말았고,
그가 죽은 자리에서는 노란 수선화가 피어났다.
(수선화의 꽃말은 '자기애' 또는 '자기도취'이다.)
< 나르키소스 신화가 시사하는 점 >
자신의 외모나 능력 등이 남들에 비해 뛰어나다고
믿거나, 자신의 그러한 측면을 사랑하는 자기 중심적
성격 또는 행동을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라고 한다.
어느 정도의 나르시시즘은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나타나며, 건전한 나르시시즘은 개인의 삶에 활력을
주기도 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타인을 사랑하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자기애(自己愛)는 사랑의 출발점이자
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나르시시즘이 지나치면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는 특권의식을 갖게 되어 원만한 인간관계를
저해하게 된다.
지나친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람들, 즉 나르시시스트
(Narcissist)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잘난 척하며,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그들은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듣고 싶은 것만을
들으려 하며, 자신의 잘못에 대해 반성하기 보다는
적반하장의 언행으로 자존심을 세우려 한다.
우리 사회, 특히 대부분의 정치인들에게 만연해 있는
내로남불은 나르시시스트들의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나르시시스트들은 남이 할 때는 비난하던 행위를
자신이 할 때는 합리화하는 이중적 잣대의 내로남불로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심화시킨다.
우리는 늘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능력을
키움으로써 과도한 나르시시즘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한 노력만이 이념, 세대, 남녀, 빈부, 노사로 갈라진
오늘날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스페인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나르키소스의
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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