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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 이야기

그리스 신화 이야기 / 아버지를 죽이고 자식을 잡아먹은 크로노스

물아일체 2022. 4. 11. 08:36

그리스 신화의 최초의 권력자는 텅 빈 우주 공간

카오스(Chaos)에서 생겨난 땅의 여신 가이아였다.

가이아는 남편 없이 혼자서 아들 우라노스를 낳았는데,

그는 하늘의 신이 되었다.

 

가이아와 우라노스는 부부가 되었고, 아내 가이아의

권력은 남편인 우라노스에게로 넘어갔다.

모계사회가 부계사회로 전환됨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우라노스와 가이아 부부는 많은 자식을 낳았는데,

아버지인 우라노스는 자식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은 우라노스 자신이 아내 가이로부터  권력을

빼앗은 것처럼, 자신도 자식들에게 권력을 빼앗기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라노스는 가이아가 낳은 자식들을 땅속,

즉 가이아의 뱃속에 다시 가둬 버렸다.

 

이러한 우라노스의 행동에 불만을 품은 가이아

막내 아들 크로노스로 하여금 우라노스를 제거한 뒤

자신의 뱃속에 있는 자식들을 꺼내달라고 사주했다.

크로노스는 농경을 담당하는 신으로, 로마 신화에서는 

사투르누스라고 불린다.

 

크로노스는 어머니 가이아가 준 낫으로 가이아와

결합하기 위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 온 아버지

우라노스의 남근(男根)을 잘라 바다에 던져 버렸다.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 바사리의 그림 '우라노스를

거세하는 크로노스')

 

이로써 그리스 신화 최초의 친부살해(親父殺害)

자행되었고, 가이아와 우라노스, 즉 땅과 하늘이

분리되었다.

 

크로노스는 아버지 우라노스의 뒤를 이어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올랐지만, 어머니 가이아의 뱃속에 갇혀 있는

형제들을 꺼내주기로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에 화가 난 가이아는 크로노스에게 "네가 네 아비를

내쳤듯, 너 역시 같은 운명이 될 것"이라는 저주를

내렸다.

 

크로노스는 누이 레아를 아내로 맞아 여러 자식을

낳았는데, 그 자식들에게 자신의 권력을 빼앗길까

두려워 자식들이 태어나는 즉시 삼켜 버렸다.

자식들을 자기 뱃속에 가둬두고 통제하려는 의도였다.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그림 '자식을

잡아먹는 크로노스')

 

아내인 레아는 막내 아이만큼은 남편 크로노스가

삼키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출산 직후에 아이를 감춘 뒤, 아이 대신

포대기에 싸인 돌덩이를 크로노스에게 주었고,

크로노스는 그 돌덩이를 아이인줄 알고 냉큼 삼켰다.

 

레아는 태어난 아이를 크레타 섬으로 빼돌려

키우게 되니 그가 곧 제우스이다.

성장한 제우스는 아버지 크로노스에게 구토제를 먹여

뱃속에 있던 형제 자매들을 모두 토해내게 했다.

 

이때 크로노스는 제우스 대신 삼켰던 돌덩이도

토해냈는데, 제우스는 그 돌덩이를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겼던 델포이 신전 앞에 놓아 두고 '옴파로스

(대지의 배꼽)'이라고 했다.   

 

(제우스가 델포이 신전 앞에 놓았다는 '옴파로스' 돌덩이)

 

제우스는 형제 자매들과 연합해 주도권 장악을 위한

두 차례의 치열한 전쟁을 치렀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타이탄(Titan), 자이언트(Giant),

사이클론(Cyclone) 등의 영어 단어는 이 전쟁에

참가했던 여러 신들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제우스는 아버지 크로노스의

뒤를 잇는 최고 권력자의 지위에 올랐고, 올림포스는

마침내 제우스를 비롯한 12신 중심의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었다.

 

         < 크로노스 신화가 시사하는 점 >

 

크로노스는 자기가 아버지 우라노스를 제거했던 것처럼

자신도 자식들에게 똑같이 당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자식들이 자기를 배반하지 못하게 삼켜 뱃속에

가둬버렸다.

 

이처럼 아버지가 자식들의 존재의 가능성을 무시하고

독립적, 주체적으로 살아가지 못하게 억압하는 것을

크로노스 콤플렉스라고 한다.

 

크로노스 콤플렉스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고대 그리스에서 땅을 둘러싼

아버지와 자식간의 갈등이 신화에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크로노스 콤플렉스를 가진 부모는 자식들이 자신의

기준에 따르지 않을 때는 심하게 화를 내고 난폭해지는

경향이 있다.

 

사도세자와 갈등을 겪다가 끝내는 뒤주에 가둬 죽게

했던 영조의 경우도 크로노스 콤플렉스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신화는 부모가 자식을 자신의 틀에 맞추려 하지 말고,

그들의 욕망을 최대한 존중해 줘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영조와 사도세자의 갈등을 다룬 영화 '사도'의 한 장면)

 

크로노스는 어버지인 우라노스를 거세하여 그의 지위를

빼앗었고, 제우스는 아버지인 크로노스를 제거하고 그의

자리를 빼앗는 친부 살해를 저질렀다. 

 

그런데 친부 살해라고 하지만 신들은 영생불멸의

존재이므로 그들이 실제로 죽었다는 뜻은 아니며,

단지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내주고 뒤로 물러나

세대교체가 이뤄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신화는 크로노스와 제우스가 그들의 아버지의 틀을

깨고 나와 자신들의 시대를 열었던 것처럼,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의 틀을 깨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