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한 사람에게 좋은 것을 다 주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림에 대한 천부의 재주를 갖고 태어난 화가들
가운데는 채 마흔 살을 넘기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요절한 화가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화가로서의 활동 기간이 짧았던 탓에
생전에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고, 가난에
시달린 경우도 많아 안타까움을 더한다.
또한, 그들 대부분은 화가로서의 활동기간이
10년 남짓에 불과해 남긴 작품도 많지 않지만,
어떤 화가들은 의외로 많은 작품을 남기며
불꽃같은 생을 살다 가기도 했다.
(1) 마사초
마사초는 15세기 최초로 원근법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린 르네상스 회화의 창시자이다.
스물 일곱 나이에 요절한 마사초는 짧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최초로 원근법이 적용된 벽화 한 점을 남겼다.
마사초가 피렌체의 도미니크 수도회 산타 마리아 노벨라
교회에 그린 <성 삼위일체> 벽화가 공개되자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벽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십자가가 중앙에 서 있고, 위로부터 성 삼위일체인
성부, 성령, 성자가 자리하고 있다.
십자가 좌우에는 성모와 사도 요한이 서 있고,
그 아래에는 그림 제작을 의뢰한 부부가 양쪽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직사각형 그림의 맨 아랫단에는 앙상한 해골이 누워
있고, 그 위에는 "나도 한때 그대와 같았노라, 그대도
지금의 나와 같아지리라" 라고 쓴 경구가 있다.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을 불러일으키는 문장이다.
(2) 라파엘로
라파엘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적 전통을 완성한
3대 천재 예술가로 꼽힌다.
로마에 머물며 교황 율리우스 2세와 레오 10세의
총애를 받으며 활약했던 라파엘로는 많은 여자와
관계를 가졌지만 평생 독신으로 지냈으며,
서른일곱 살에 생을 마감했다.
라파엘로의 대표작 〈아테네 학당〉이다.
웅대한 규모와 빈틈없는 구도, 다양한 인물들의 개성과
특징을 잘 잡아낸 표현력, 그리고 섬세한 색채의
사용을 통해 조화의 미를 보여준 걸작이다.
서양 고대에서부터 르네상스 시기까지 54명 석학들의
학문적 열정이 표현되어 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인문학
학자들은 상단부에 그렸고, 하단부에는 유클리드,
피타고라스, 프톨레마이오스 같이 자연과학을 연구한
학자들을 그렸다.
(3) 카라바조
카라바조는 1600년경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를 열었던
천재화가이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할 줄 몰랐던 카라바조는
10여 건의 형사 사건에 연루되기도 하고, 나중에는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었다.
도망자 생활을 하던 카라바조는 교황의 사면을 받기
위해 로마로 가던 중 열병으로 38세에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다윗과 골리앗>은 카라바조가 교황의 사면을 염두에
두고 그렸던 작품이라고 전해진다.
그림에서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의 얼굴은
승리의 기쁨에 찬 영웅의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다윗은 자신이 죽인 적장 골리앗을 연민의
눈길로 쳐다보고 있는 슬픈 표정이다.
카라바조가 그린 골리앗의 잘려진 머리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의
얼굴 또한 카라바조의 젊은 시절의 모습이라고 한다.
카라바조는 인간이 경험하는 승리와 패배, 영광과 절망,
겸손과 교만의 양면을 다윗과 골리앗의 모습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
(4) 툴루즈 로트렉
로트렉은 프랑스에서 유서 깊은 백작 가문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가문의 계속되는 근친혼의 영향으로 유전적
질환을 갖고 태어났다. 여기에 10대 때의 사고로 인해
더 이상 다리가 자라지 않게 되어 152 Cm의 작은 키에
하반신이 과도하게 짧은 장애를 안고, 37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면서 많은 그림을 남겼다.
로트렉에게 물랭루즈는 삶의 터전이자 화실이었고,
그곳에서 펼쳐진 공연들과 사람들은 그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또한, 로트렉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포스터이다.
그는 단순하고 추상적인 디자인의 물랭루즈 포스터로
주목을 받았으며, 현대 포스터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5) 빈센트 반 고흐
고흐는 1853년 네덜란드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20대 후반에 뒤늦게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37살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경제적 압박과
우울증으로 힘겨운 삶을 살았지만, 오직 그림에만
온 영혼을 바치며 오백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그는 죽은 뒤 사람들로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화가로 평가 받고 있지만, 그의 생전에 팔린 그림은
<붉은 포도밭> 단 한 점 뿐이었을 정도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고흐의 마지막 작품인 <까마귀가 나는 밀밭>은
그의 마지막 심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그가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슬픔과
고독감이었으며, 그림 전면에는 어느 곳으로도 이어지지
않은 세 갈래의 길이 있다.
고흐는 이 그림을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권총 자살을 했다.
(6) 조르주 쇠라
32세의 짧은 삶을 살다 간 프랑스의 쇠라는
신인상주의를 발전시키고, 반 고흐나 피카소 같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신인상주의 선언서'라고도 불리는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쇠라의 대표 작품이다.
주말을 맞아 파리를 가로지르는 센강 북쪽에 있는
그랑드자트 섬으로 파리 시민들이 소풍을 나온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다양한 색채와 빛, 그리고 형태들을 점묘 화법을
통해 꼼꼼하게 표현하고 있다.
쇠라는 이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2년이라는
기간 동안 무수한 빛의 망점을 화폭에 옮겼고,
60여 점의 색채 습작을 남기기도 했다.
(7)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이탈리아 출신으로 파리에서 활동했던 모딜리아니는
많은 여인들과 염문을 뿌린 미남 화가였다.
술과 마약, 빈곤한 삶으로 쇠약해진 그는 36세의
나이에 결핵으로 삶을 마감했다.
모딜리아니가 죽은 이틀 뒤 아내인 22살의 잔느
에뷔테른은 둘째 아이를 임신한 몸으로 5층 창문에서
뛰어내려 모딜리아니의 뒤를 따랐다.
모딜리아니는 평생 단 한 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그것도 그의 나체화가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경찰의
제지로 금방 철수해야만 했다.
그의 그림은 살아있을 때는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고,
이름조차 미미했다.
그러나 특유의 긴 목선과 눈동자가 없는 독특한
그의 작품은 그가 죽은 후 새로운 평가를 받게 되었다.
(8) 에곤 쉴레
20세기 초반의 오스트리아 화가 에곤 쉴레는
구스타프 클림트를 만나면서 클림트의 우아한 장식적
요소에 영향을 받았다.
그는 클림트의 정식 후계자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고, 오스트리아에서 인정받는 예술가의 지위에
올라서며 큰 성공을 거두는 듯 했다.
그 시기에 에곤 쉴레는 곧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는
기쁜 마음을 <가족>이라는 그림에 담았다.
아기와 같은 곳을 바라보는 엄마, 가장으로서 가족을
보호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화가 자신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순수하고 천진한 가족 초상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 6개월의
그의 아내가 당시 유럽을 휩쓸던 스페인 독감에 걸려
사망했고, 에곤 쉴레 역시 며칠 후 독감으로 28살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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