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언제,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는지는 모르지만
다빈치의 <모나리자>, 귀도 레니의 <베아트리체 첸치>,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세계 3대 미녀
그림으로 회자된다.
예로부터 화가들은 아름다운 여인을 그리려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신체와 얼굴, 이목구비의 조화에
1대 1.618이라는 황금비율을 찾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미녀에 대한 기준은 객관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와 지역, 그리고 사람에 따라 다르다.
사람들은 단순히 아름답고 화려한 모습 보다는
무언가 사연이 있을 것 같은 신비로움과 도도함,
그리고 마음을 끌어당기는 우수가 깃든 모습에
더욱 감동받고 사랑에 빠지는 것 같다.
(1)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모나리자>는 1503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로 53Cm, 세로 77Cm의 작은 작품이다.
피렌체에 살던 한 상인의 부인을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데, '모나리자'는 ‘리자 부인’이라는 뜻이다.
수수한 검정 드레스를 입고, 수줍은 듯 살며시 입에
머금은 미소가 신비롭고 아름답다.
그림 속 여인은 눈썹이 없는데, 당시에는 넓은 이마가
미인으로 여겨져서 여성들이 눈썹을 뽑는 것이 유행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지만,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다빈치는 모나리자의 미소와 얼굴, 손 등의 윤곽선을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 처리하는 스푸마토 기법으로
신비롭게 보이는 효과를 자아냈다.
이탈리아에 머물던 다빈치는 후원자였던 줄리아노 데
메디치가 죽자 프랑스로 갔다.
이탈리아의 선진 문화를 부러워하던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 1세는 다빈치를 앙부아즈 인근의 성에
머물도록 배려했고, 다빈치는 프랑스에서 생을 마쳤다.
이 때문에 세계적 명화 〈모나리자〉는 프랑스의 소유가
되어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 귀도 레니의 <베아트리체 첸치>
'제 2의 라파엘로'라고 불리는 귀도 레니는 풍부한
색체 감각과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드는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의 대표 화가이다.
아버지를 살해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베아트리체
첸치의 처형 직전의 모습을 그렸다.
이 그림은 훗날 엘리자베타 시라니에 의해 모사되기도
했는데, 원작과 모작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게 그려졌다.
〈베아트리체 첸치〉는 ‘스탕달 신드롬’을 이야기할 때
흔히 언급되는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스탕달 신드롬은 ‘뛰어난 예술작품을 봤을 때 극도의
감동에 휩싸여 잠시 정신이 혼미해지는 현상’을 뜻하는
심리학 용어이다.
베아트리체 첸치는 16세기 이탈리아에 실존했던 귀족
프란체스코 첸치의 딸로, 그 미모가 빼어났다.
그녀의 아버지 프란체스코는 폭력적이고 비도덕적인
사람으로, 가족들에게 폭행을 일삼았고, 급기야 14살의
아름다운 베아트리체를 겁탈까지 했다.
견디다 못한 베아트리체와 가족들은 아버지를 살해한 후,
사고로 위장하기 위해 시체를 발코니에서 떨어뜨렸다.
그러나 진상이 곧 밝혀져 가족들은 모두 체포 당한다.
시민들의 구명 노력이 있었지만, 첸치 가문의 재산에
욕심을 낸(?) 교황 클레멘스가 사면을 거부함에 따라
베아트리체를 비롯한 연루자들은 사형에 처해졌다.
그녀의 나이 22살 때의 일이었다.
(3)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베르메르가 그린 이 작품은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닮았다고 하여 '북유럽의
모나리자' 또는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라고도 불린다.
머리에 터번을 두른 그림 속의 소녀는 묘한 눈빛과
신비스러운 표정으로 왼쪽 어깨를 틀어 고개를
돌리고 있다.
왼쪽 귀에 걸린 진주가 하얀 옷깃에 반사된 듯
맑고 투명하게 빛난다.
커다란 눈동자와 살짝 벌어진 입술, 무언가를 동경하는
듯한 표정을 지닌 소녀는 관람객들에게 비밀스러움이
깃든 신비감을 주고 있다.
소녀의 모델이 누구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는데,
2003년에 제작된 스칼렛 요한슨과 콜린 퍼스 주연의
동명의 영화에서는 베르메르의 하녀가 그림의 모델로
나온다.
(4) 프랑수아 부셰의 <퐁파드르 부인>
부셰는 18세기 프랑스 궁정을 장식했던 로코코풍의
화가이다.
부유한 은행가의 딸로 태어나 루이 15세의 정부가 된
퐁파드르 부인은 푸른 눈동자와 백옥 같은 피부를 가진
미인으로, 춤과 연기, 승마도 잘 했다고 한다.
또한, 그녀는 풍부한 독서로 쌓은 교양과 무슨 이야기든
극적으로 이끌어가는 말 솜씨로 19년 동안 루이 15세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당시 프랑스에서 유행한 로코코 양식은 퐁파드르 부인과
그녀가 가장 아끼던 화가 부셰와의 합작품이라고 할
정도였는데, 퐁파드르 부인은 명석한 두뇌와 탁월한
미적 감각으로 회화, 도자기, 가구 및 건축 등을 적극
후원하고 육성했다.
(5) 이반 크람스코이의 <미지의 여인>
크람스코이는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대표 화가로,
특히 초상화를 잘 그렸다.
그림 속의 여인은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주인공 안나에게서 영감을 받아 그린 것이라고 한다.
크람스코이와 톨스토이는 각별한 사이로,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를 집필할 당시 톨스토이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이 그림은 실제로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책 표지에
많이 쓰이고 있다.
마차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는 여인의 모습이
당당하다.
도도해 보이는 차가운 표정 안에는 꼭 누르고 있는
뜨거운 열정도 함께 느껴진다.
4년의 작업 끝에 완성한 이 작품에 크람스코이는
<미지의 여인(unknown woman)>이라는 제목을
붙였고, 실제 모델이 누구인지는 수수께끼로
남겨 놓았다.
(6)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루의
<오송빌 백작 부인의 초상>
앵그르는 19세기 프랑스 고전주의 대표 화가로,
여성의 소묘에 천재적인 역량을 보였다.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보면서 사실적인 세밀함에
놀라고, 그 우아함에 더욱 놀란다고 한다.
사진 보다 정교하다는 오송빌 백작부인의 초상은
앵그르가 3년 동안의 습작 끝에 완성한 걸작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초상화에 찬사를 보냈는데,
당대의 시인 보들레르는 “앵그르의 천부적 재능은
젊고 아름다운 여인과 마주쳤을 때 가장 힘을
발휘한다”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그림 속 여인은 관람자를 유혹이라도 하듯 오묘한
표정으로 관능미를 보이고 있다.
푸른색 비단 드레스는 걸을 때 바스락 소리가
들릴 것 같고, 손으로 만지면 그 질감이
전달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거울에 비친 뒷모습은 사실감을 강하게 표현했으며,
뒷머리에 꽂은 머리빗과 리본의 광채는 뛰어난 기교와
재능을 보여준다.
(7) 자크 루이 다비드의 <레카미에 부인의 초상>
1800년대 프랑스 신고전주의 미술을 이끌었던
다비드가 그린 이 그림의 주인공 레카미에 부인은
나폴레옹 시대에 파리 최고의 미인으로 사교계를
지배했던 전설적인 인물이다.
<레카미에 부인의 초상>은 차분하면서도 우아하고,
고요하며 안정된 분위기가 고풍스런 가구와 의상,
고대 로마풍의 머리형과 잘 어울린다.
단촐한 실내가구와 억제된 색조는 오히려 작품의
품위를 높여주고 있다.
그런데, 작품의 주인공 레카미에 부인은 작품의 제작
기간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것에 불만을 품고
다비드의 제자인 푸랑수아 제라르에게 다시 초상화
제작을 부탁했고,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다비드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그림 완성을 포기하는 바람에
결국 이 작품은 미완성의 상태로 남게 되었다.
(8) 프랑수아 제라르의 <레카미에 부인의 초상>
제라르는 자신의 스승인 다비드가 레카미에 부인을
우아하고 고결한 여신처럼 그린 것과는 달리
그녀를 요염하고 애교가 넘치는 여인으로 묘사했다.
같은 주인공을 그린 <레카미에 부인의 초상> 두 작품
가운데 당대에는 다비드의 것보다 제라르의 것이
더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오늘날에는 다비드의 작품이
부인의 품격을 훨씬 잘 표현한 명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제라르는 고대 분위기를 내기 위해 배경을 번잡하게
묘사하여 주인공의 내면성을 전달하는 데 실패했지만,
다비드는 배경을 생략하고 단순미를 강조함으로써
레카미에 부인의 고상한 품격을 성공적으로
시각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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