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디트>는 구약성서의 외경 '유디트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유다 여인이라는 뜻의 유디트는 이스라엘 베툴리아
마을의 젊은 과부였다.
그녀는 아시리아군이 이스라엘을 침략하자 적장인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해 술에 취하게 한 뒤, 그 목을
잘라 유대인의 사기를 높이고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영웅적 여인이다.
세례 요한을 죽게 만든 살로메와 마찬가지로
유디트는 자신의 성적 매력을 이용해 한 남자를
파멸시킨 여인, 즉 팜므 파탈(femme fatale)로
여겨지게 되면서 그녀의 이야기는 화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1) 산드로 보티첼리의 <베툴리아로 돌아오는
유디트>
보티첼리는 15-16세기 피렌체에서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으며 종교 및 신화와 관련된 그림을 주로
그렸다.
그림에서 유디트는 적장을 죽인 영웅의 모습을 담고
있지는 않다.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 나무 가지와 칼을 들고 있는
유디트는 어딘지 모를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
하녀의 머리 위에 얹어진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싼
보자기의 끝자락이 급박했던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2) 조르조네의 <유디트>
조르조네는 16세기 베네치아 회화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화가이다.
유디트는 자신이 자른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한쪽 발로 밟고 서있다.
핏기가 빠져 검게 변한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는
죽음 당시의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반면,
유디트의 얼굴은 평온하다.
르네상스 시기의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죄를 상징하는
뱀의 머리를 밟고 있는 것으로 그려지곤 했는데,
조르조네는 유디트를 성모 마리아의 모습으로 묘사했다.
훤하게 드러난 유디트의 맨다리와 신발을 신지 않은
맨발은 그녀가 여성의 육체적 유혹을 무기로
홀로페르네스를 제압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3)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유디트>
티치아노는 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이끈
베네치아의 대표 화가이다.
살해 장면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청순한 모습으로
유디트를 그렸다.
당찬 유디트와 그녀가 들고 있는 적장의 잘린 목의
침묵이 묘한 여운을 남긴다.
(4) 카라바조의 <유디트>
르네상스 이후 바로크 미술 탄생에 기여한 카라바조는
늘 논란과 화제를 몰고 다닌 화가였다.
다혈질이었던 그는 폭행으로 수차례 감옥을 드나들었고,
살인까지 저질렀으며, 교황의 사면을 받기 위해 로마로
가던 중 말라리아에 걸려 38세에 사망했다.
카라바조는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죽이는 유디트를
앳된 티를 벗지 못한 소녀로 그려내며 팜므 파탈의
전형으로 표현했다.
유디트의 얼굴은 매우 여리고 예쁘게 그려져 있다.
그녀가 나라를 구한 위대한 영웅이지만, 성적 매력이
있는 온순하고 우아한 여성임을 부각시킨 것이다.
(5)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유디트>
젠틸레스키는 이탈리아 초기 바로크 화가로,
당시의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화가 중 한 명이었다.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는 끔찍한 분투와 유혈이 낭자한
장면의 묘사를 보여준다.
강인한 힘이 느껴지는 유디트의 팔은 홀로페르네스를
완전히 제압하고 있다.
머리칼을 움켜쥐고 짓누르는 왼팔과 칼을 쥔 오른손의
사실적 움직임이 압도적이다.
어딘가 겁먹고 연약해 보이는 카라바조의 유디트와는
달리, 젠틸레스키의 유디트에서는 굳은 의지가 보인다.
젠틸레스키는 그림 공부를 하던 시절 자신의 스승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기억과 분노를 바탕으로, 유디트를
강인하고 영웅적인 여성으로 표현했다.
(6) 크리스토파노 알로리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든
유디트>
알로리는 17세기초 피렌체의 화가이다.
뛰어난 예술적 재능과 잘 생긴 외모를 가졌던 알로리는
젠틸레스키를 연모했지만 실연을 당하게 되었고,
그 때의 감정을 담아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림에서 젠틸레스키는 유디트로, 알로리 자신은
홀로페르네스로 묘사했다.
아름다운 유디트의 얼굴에서 적장의 목을 자른 승리의
쾌감은 보이지 않는다.
(7) 렘브란트의 <홀로페르네스의 연회에 온 유디트>
빛의 마술사, 빛과 어둠의 화가로 불리는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의 1631년 작품이다.
홀로페르네스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유디트와
그녀를 따라온 젊은 하녀, 그리고 노파를 그렸다.
어둠 속에 희미하게 그려진 노파는 잠시 후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면 그것을 담을 자루를
들고 있는데, 이는 유디트의 행위가 충동적인 것이
아니라,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것임을 암시한다.
렘브란트가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한 독립전쟁을 벌이고 있었기에
아시리아의 침략을 받았던 이스라엘 민족이 처했던
상황에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8)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디트>
찬란한 황금빛, 화려한 색채, 몽환적인 분위기는
오스트리아의 대표 화가 클림트 그림의 특징이다.
다른 화가들이 유디트의 행위에 집중해 홀로페르네스를
죽이는 긴장감이 도는 장면을 그려낸 것과 달리,
클림트는 유디트라는 인물 자체에 집중해 홀로페르네스를
죽인 후, 승리감에 도취한 에로틱한 모습의 유디트를
그렸다.
적장의 목을 벤 영웅이 아니라, 가슴을 훤히 드러낸
팜므 파탈로서의 유디트를 묘사한 것이다.
잘린 홀로페르네스의 목은 오른쪽 아래에 일부분만
보이도록 그려져 관람자들의 시선이 유디트에게
집중되도록 하고 있다.
작품의 일부로 볼 수 있는 금빛 액자 윗부분에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라는 글자를 새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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