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하나의 수치는 감췄어도 자신이 안고 있는
또 다른 수치는 감출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굴을 붉혔지만, 도도한 미소를 띤 채 부끄러워하지
않겠다는 시선으로 마을 주민들과 이웃 사람들을
둘러 보았다.
그녀의 옷가슴에는 붉고 고급스러운 천에 금실로
정교하게 수를 놓고 화려하게 장식한 A자가 있었다."
"만약 이 청교도 무리 속에 가톨릭교도가 있었다면
복장과 자태가 너무도 그림 같고 가슴에는 아기를 안은
이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에서 수많은 이름난 화가들이
서로 질세라 그려 온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전 말하지 않을 겁니다! 헤스터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으나, 익히 아는 그 목소리를 알아듣고 대답했다.
내 아이는 하늘의 아버지를 찾을 겁니다.
지상의 아버지는 결코 알지 못할 것입니다!"
"공정한 법대로 하자면 극형이 마땅하지만 그런 벌을
내리지 못했소. 그랬다면 사형을 받았겠지.
하지만 그분들은 큰 자비와 동정을 베풀어 헤스터에게
처형대에 세 시간만 서 있고, 그 뒤로는 남은 평생
가슴에 치욕의 징표를 달고 다니라고 판결한 것이오."
"이렇게 해서 헤스터는 이 세상에서 수행할 역할을
가지게 되었다.
비록 세상이 여자인 그녀에게 카인의 이마에 찍힌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낙인을 찍긴 했지만,
타고난 강인한 성격과 보기 드문 능력을 지닌 그녀를
완전히 매장시키지는 못했다."
"하느님이 제게 주신 아이예요! 그녀가 소리쳤다.
하느님이 제게서 다른 모든 것을 가져가고
그 대가로 주신 아이라고요.
이 아인 제 행복입니다! 동시에 제 고통입니다!
펄은 제가 이곳에서 살 수 있게 해줍니다!
또한 제게 벌도 주지요!
모르시겠어요? 이 아이가 주홍 글자라는 것을!"
"헤스터가 교묘하고도 잔혹한 판결에 영원히
발이 묶여 버린 듯한, 그 치욕스러운 마법의 원 안에
갇혀 있는 동안 훌륭한 목사는 성스러운 교단에서
자신들의 영혼을 속속들이 그의 뜻에 내맡긴 청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교회당에 있는 성자 같은 목사!
장터에서 주홍 글자를 달고 있는 여인!
그 두 사람에게 똑같이 불타는 낙인이 찍혀 있다는
불경스러운 상상을 감히 어느 누가 했을까?"
미국 작가 너대니얼 호손이 1850년에 발표한 소설
'주홍 글자(The Scarlet Letter)'에 나오는 문장이다.
작품은 청교도의 엄격한 윤리가 지배하던 17세기
미국 뉴잉글랜드의 보스턴에서 간통이라는 죄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한 여인과 젊은 목사, 그리고
간통의 결과로 태어난 어린 딸과 늙은 남편,
이 네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 보고 있다.
여주인공 헤스터는 가슴에 간통(Adultery)을 의미하는
주홍 글자 A를 새기고 살아야 하는 형벌을 받았고,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살아간다.
그녀의 간통 상대자인 젊은 목사 딤스데일은 유능하고
성스러운 성직자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헤스터의 드러난 죄와 딤스데일의 드러나지 않은 죄,
겉으로는 차이가 있지만 그 두 사람 모두 평생 죄책감
속에서 살아간다는 이야기이다.
사람은 살면서 크든 작든 죄를 짓게 마련이고,
그 가운데 일부는 겉으로 드러나지만, 어떤 것들은
드러나지 않은 채 본인만 알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남들이 알든 모르든 죄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며, 같은 무게가 있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天網恢恢 疏而不失 (천망회회 소이불실)
하늘의 그물은 크고 넓어 엉성해 보이지만
놓치는 것이 하나도 없다. <노자 도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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