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으로 태어난 몸은 조심스럽게 운명으로 정해진
마지막 날을 볼 수 있도록 기다리라. 아무 괴로움도
당하지 말고 삶의 저편에 이르기 전에는 이 세상
누구도 행복하다고 말하지 말라."
아이스킬로스, 에우리피데스와 함께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작가로 일컬어지는 소포클레스의 희곡
'오이디푸스 왕'에 나오는 문장이다.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가 내는 죽음의 수수께끼를 푼
덕분에 테베의 왕이 되는 영광을 얻었고 사람들은 그의
행운을 부러워했지만 그것은 오이디푸스에게 닥쳐올
연이은 불행의 단초가 된다.
많은 사람들, 특히 동양인들은 길흉화복과 흥망성쇠가
순환하는, 인생지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보는
세계관의 경향이 강하다.
새옹지마란 변방에 살고 있는 늙은이의 말이라는 뜻인데,
변방 노인의 말처럼 좋은 일이 화(禍)가 될 수도 있고,
화가 복(福)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중국 북쪽 변방에 사는 노인이 기르는 말이 어느 날
국경을 넘어 오랑캐 땅으로 넘어갔고, 이웃들은 노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러나 노인은 "이 일이 복이 될지 누가 압니까?" 하더니
도망쳤던 말이 암말을 데리고 다시 돌아왔다.
이에 이웃 사람들이 잘 되었다며 축하하자 노인은
"이게 또 화가 될지 모른다."며 기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얼마 후 노인의 아들이 말을 타다 낙마를 해서 불구가
되었다. 그런데 이번엔 전쟁이 났고 아들은 장애 때문에
전쟁에 나가지 않게 되어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이 일화에서 새옹지마라는 고사성어가 생겨났다.
화가 바뀌어 복이 된다는 전화위복이나 좋은 일에는
탈이 많다는 호사다마 역시 새옹지마와 맥을 같이 하는
동양의 순환론적 세계관이 반영된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춘추시대 말기 와신상담의 드라마틱한
복수혈전에서 월나라 왕 구천이 오나라 왕 부차를
멸망시키는데 가장 공이 컸던 책사 범려는 “공이
많으면 화가 뒤따라 온다.”며 월왕 구천의 만류를
뿌리치고 모든 기득권을 포기한 채 월나라를 떠난
덕분에 토사구팽의 위험을 벗어났다.
"번성할 때 행동을 자제하여 쇠퇴를 막고, 반대로
몰락의 시기에도 낙담하지 않고 기회를 창출하여
회생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월나라를 떠난 뒤 농업과 상업을 통해 많은 부(富)를
축적한 거부가 되어 오늘날까지 재물의 신(財神)으로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된 범려의 소신이 담긴 말이다.
禍兮福所倚 (화혜복소의)
福兮禍所伏 (복혜화소복)
화는 복 속에 기대여 있고,
복은 화 속에 숨어 있다.
도가 철학자인 노자의 말이다.
인생이든 경제든,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부침이
있고 그것은 흥망성쇠의 순환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그 순환의 사이클을 잘 파악하고 활용할 수
있다면 오히려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지금 호황을 누리고 있다면 그것은 불황의 시초임을 알아
자만하지 말고 호황 끝에 닥쳐올 불황에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이와 반대로 만약 지금 실패, 불행을 맞았다면 좌절하지
말고 희망과 긍정으로 참고 견뎌야 한다.
지난 4월 15일 총선에서는 여당인 민주당은 압승을
거뒀고 야당인 통합당은 참패를 당했다.
그렇다고 여당이 기쁨에 들떠 교만해져서도 안되고,
야당은 좌절과 체념에 빠져서도 안 될 것이다.
어려운 일을 당하면 그것을 복으로 바꾸려는
전화위복을 위한 노력은 기울이되, 연이은 성공에
만족하고 교만해져 불행을 자초하는 호사다마는
경계해야 할 것이다.
성경 시편에 보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귀절이 있다.
이는 다윗 왕 때 있었던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어느 날 다윗 왕이 세공사를 불러 말했다.
"나를 위한 반지를 하나 만들되, 내가 승리를 거둬 너무
기쁠 때는 교만하지 않게 하고, 내가 절망에 빠지고
시련에 처했을 때는 용기를 줄 수 있는 글귀를
넣으라."
왕의 지시를 받은 세공사는 적당한 글귀가 생각나지
않아 고민하다가 다윗의 아들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솔로몬은 세공사에게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글귀를
넣도록 조언했고, 세공사는 이 글귀를 새겨 넣은 반지를
만들어 다윗 왕에게 바치니 왕은 크게 만족해 했다고
한다.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좋은 것도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닙니다.” 모파상의 소설 '여자의
일생' 끝부분에 나오는 대사이다.
세상에는 완전한 행복도 완전한 불행도 없다.
세상사 모든 것은 다 변할 수 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기쁜 일이든, 권력을 가진 높은
자리에 있든, 비천하고 힘없는 낮은 자리에 있든, 돈이
많은 부자이든, 돈이 없는 가난뱅이든, 이 모든 것이
어느 날 자리가 뒤바뀔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눈 앞의 결과에 일희일비 하기 보다는 그 상황과 문제의
본질을 고민하며,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가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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