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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단상

단오와 굴원의 어부사(漁父辭)

물아일체 2023. 6. 22. 03:30

오늘은 음력 5월 5일 단오이다.

한식이 되면 면산에서 불에 타 죽은 개자추가 생각나듯,

단오에는 멱라수에 빠져 죽은 굴원을 떠올리게 된다.

 

 

굴원(BC 343 - BC 278년)은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의

정치가이자 시인으, 능력과 충성심이 뛰어났지만

간신들의 모함과 시기로 인해 관직에서 쫓겨났다.

 

억울하게 추방되어 강호를 떠돌던 굴원이 강가에서

어부를 만나 나누었던 대화를 적은 글이 어부사인데,

초나라 사람들이 노래로 즐겨 불렀다고 한다.

 

"어부가 물었다.

'당신은 삼려대부가 아닙니까?

무슨 까닭으로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굴원이 대답했다.

'擧世皆濁 我獨淸 (거세개탁 아독청)

衆人皆醉 我獨醒 (중인개취 아독성)

온 세상이 모두 혼탁한데 나만 홀로 깨끗하고,

뭇사람들은 모두 취해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도다.

차라리 강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 밥이 될지언정,

어찌 세속에 몸을 더럽힐 수가 있겠는가?'

 

굴원의 말이 끝나자 어부는 노를 저어 떠나가며

노래를 불러 말했다.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창랑지수청혜 가이탁오영)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창랑지수탁혜 가이탁오족)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 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탁하면 내 발을 씻으리.'

 

일러스트 출처 : 서울신문

 

굴원은 결국 돌을 껴안은 채 멱라수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굴원의 어부사는 개인이 고결함을 지키기 위해

세상과의 부조화에서 오는 고통을 감내하며 힘들게

살아갈 수도 있지만, 세상과 화합하고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도 있다는 대립되는 두 가지 삶의 유형을

제시하고 있다.

, 유가적 삶과 도가적 삶이 병존하는 현실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쉽지 않다.

세상과 화합하는 삶의 방식은 자칫 시류에 영합하는

기회주의로 비춰질 수 있는 반면,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강직한 성격은 독단으로 비춰질 가능성도 있다.

굴원의 어부사는 우리에게 개인이 자존감을 유지하면서도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어부사라는 시제(詩題)는 우리 문학사에도 등장한다.

조선 중종 때 이현보는 고려시대부터 전해오던

어부가를 어부사로 개작했으며, 효종 때 보길도에서

지내던 윤선도는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같은 흥겨운

후렴구가 반복되는 순우리말의 춘하추동 연시조

어부사시사를 창작하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굴원이 죽은 음력 5 5일을 단오라 하여

그를 추모하고 있다.

이날이 되면 갈대잎으로 싼 송편을 굴원이 빠져 죽은

멱라수에 던지는데, 이는 물고기들이 굴원의 시신을

뜯어 먹지 말고 송편을 먹으라는 뜻이 담긴 놀이라고

한다.

 

 

또한, 화려하게 장식한 용선(龍船) 경주도 열리는데,

이 역시 물에 빠진 굴원을 구하기 위해 다투어 배를

저어간다는 의미를 담은 놀이이다.

 

우리나라 단오의 기원은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온

수릿날이다.

한국의 단오는 날짜와 명칭은 중국의 것을 차용했지만

각종 의식과 오락을 행하던 콘텐츠는 수릿날 전통을

계승한 독창적인 명절이라고 하겠다.

 

2023년 강릉 단오제 홍보 포스터

 

강릉 단오제가 유네스코의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었던 것도 우리 단오의 문화적 독창성과

예술성을 인정 받은 덕분이다.

 

()의 수 5가 겹치는 길일인 음력 5 5단오에는

특히 젊은 남녀들이 씨름, 그네, 널뛰기 같은 다양한

놀이를 즐겼는데, 춘향전의 이몽룡이 광한루에서

그네를 타는 춘향이를 처음 본 것도 단오 때의 일이다.

 

단오를 맞아 굴원의 어부사와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를

잠시 읽으며 삶에 대한 자세를 생각해 보고 일상의

여유로움도 느껴보면 좋을 것 같다.

 

(4년 전에 올렸던 글을 되살리기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