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개들은 도둑을 봐도 짖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도둑들이 너무 많고, 무엇보다 자기에게
밥을 주는 주인 조차도 도둑이어서 차마 짖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곳곳에 부정부패가 만연한 우리 사회를 풍자한
우스갯소리이다. 좀 썰렁하지만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도둑에는 큰 도둑과 작은 도둑이 있다.
작은 도둑은 생계를 위해 도둑질을 하지만,
큰 도둑은 축재를 위해 도둑질을 한다.
작은 도둑은 개인의 재물을 훔치지만,
큰 도둑은 나라의 재물을 훔친다.
나라에 작은 도둑들이 많아지는 것은 큰 도둑들이
많기 때문이다.
작은 도둑을 잡기 전에 큰 도둑을 먼저 잡아야 한다.
큰 도둑이 없어지면 작은 도둑은 자연히 사라진다.
고대 중국 전국시대의 장자는 "혁대 하나를 훔치면
사형에 처해지지만, 나라를 훔치는 자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산다.”고 했다.
중국 최고의 역사서라고 할 수 있는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사기 백이숙제열전'에서 "백이와 숙제는
어질고 행실이 깨끗했지만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고,
유명한 도적인 도척은 날마다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인육으로 회를 뜨는 악행을 저질렸지만
평생 잘 살면서 장수를 누렸다.
천도 시야 비야(天道是耶非耶), 하늘의 도는 과연
옳은 것인가 틀린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이 보다 앞선 춘추시대 노자는 "천망회회 소이불실
(天網恢恢 疏而不失), 하늘의 그물은 크고 넓어서
성긴 듯 보이지만 놓치는 것이 없다."고 했는데,
과연 우리 사회의 정의가 살아있는지 회의가 들 때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나라를 훔치는 큰 도둑이란, 힘으로 나라의 통치권을
빼앗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나랏일을 담당하는 관리가 그 권한과 영향력을
이용해 뇌물 같은 사익을 챙기는 경우는 물론,
나랏돈을 횡령하거나, 국민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봉급만 축내는 사람들 역시 나라를
훔치는 큰 도둑이다.
공자는 "나라 살림을 맡은 관리들이 제 살림하기에
급급하면 그 나라는 도둑을 가슴에 품고 있는 꼴이
되고, 관리들이 부자로 살려고 하면 강도를 모시고
사는 꼴이 된다"고 했다.
영조 때의 문신 심익운은 외출했다가 집으로 오는
길에 머슴이 큰 뱀은 잡았다가 곧 놓아주고,
작은 뱀은 잡아서 죽이는 장면을 보았다.
그 연유를 물었더니 머슴은 “큰 뱀은 영(靈)이
있어서 죽일 수 없다. 죽이면 사람에게 앙갚음을
한다. 하지만 작은 뱀은 아직 어려서 죽이더라도
사람에게 앙갚음을 못한다.”고 말했다.
후안무치한 큰 도둑들은 오히려 보란 듯이 잘 살고,
이른바 생계형 좀도둑은 벌을 받는 모순된 현실을
큰 뱀과 작은 뱀의 경우를 들어 꼬집은 일화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이며 민본사상가인 정약용은
전라도 강진에서의 유배생활 때 탐관오리들의
횡포와 그로 인한 백성들의 처참한 생활을 생생하게
목격하고, 그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함께 개혁의
방안을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등의 저서에 담았다.
정약용은 직책이 높아지면 권한도 커져 도둑질의
규모도 커지므로 큰 도둑에게는 벌을 엄하게 하고,
작은 도둑들에게는 작은 벌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또한, 막중한 책임을 지고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
일해야 하는 자들의 범죄는 참으로 무서운 범죄라고
하면서 큰 도적을 제거하지 않으면 백성들은 모두
죽게 된다고 했다.
조선이 망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된 근본원인은
조선 후기 관리들의 부패와 민심 이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 고위직에 내정된 사람들이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낙마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럴 때면 인사를 주관하는 측에서는 예수도
청문회를 통과할 수 없을 것이라는 하소연을 하기도
하지만, 인사실패에 대한 변명일 뿐이다.
인사가 아무리 힘들어도 깨끗하고 양심적인 사람을
찾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작은 비리를 눈감아주기 시작하면 공직 윤리가
무너지고, 결국에는 합법과 정상, 상식은 실종되고
불법과 반칙, 변칙이 사회에 만연하게 될 것이다.
국가투명성은 그 나라의 윤리와 도덕의 수준을
나타낸다.
국제투명성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투명성은
세계 중하위권이다. 이처럼 투명성이 낮은 것은
생계형의 작은 도둑들 때문이 아니라,
나라를 훔치는 축재형 큰 도둑들 때문이다.
渴不飮盜泉水 (갈불음 도천수)
아무리 갈증이 심해도 도천의 샘물은 마시지 않는다.
도천은 산동성 사수현 동북쪽에 있다고 하는데,
그 곳을 지나던 공자는 몹시 목이 말랐지만
그 샘물을 마시지 않았다.
도둑의 샘물을 마시는 것 조차도 군자로서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삶이 힘들고 지칠 때면 원칙을 버리고
쉽게 살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싶다.
그러나 그 유혹을 이겨냈을 때 삶은 빛난다.
국민의 재물을 훔치는 도둑이 아니라, 감동을 주는
행동으로 국민의 마음을 훔치는 도둑이 많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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