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편 가르기를 좋아한다.
여러 모임 가운데 특히 종친회, 향우회, 동창회 같은
모임이 성황을 이루는 것은 혈연, 지연, 학연이라는
뚜렷한 기준을 바탕으로 모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어떤 집단이나 조직에
소속되고자 하는 심리는 본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경우 좀 지나친 면이 없지 않다.
이런저런 연(緣)을 기준으로 수많은 모임과 단체가
생겨났으며, 그 가운데 해병대 전우회와 고려대 동문회,
그리고 호남 향우회는 응집력이 강하기로 소문이 나
다른 모임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 인가 이러한 편 가르기를 하는
또 하나의 강력한 기준이 생겼으니, 그것은 정치이념
즉, 사상연(思想緣)이다.
사상연에 따른 편가르기는 전통적인 혈연, 지연, 학연에
비해 훨씬 더 심각한 패거리 문화를 낳았다.
사상연으로 모인 패거리들은 "우리 편인가?" 하는
질문을 무엇 보다 중요시한다.
적이냐 동지냐를 먼저 따져 피아 구분을 확실히 하고
자기 진영의 단결을 도모한다.
黨同伐異 (당동벌이)
당동벌이란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옳고 그름을 떠나 무조건 다른 집단 사람들을
흠집 내고 무너뜨리려 하는 행태를 말한다.
2004년 교수신문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했던
단어인데, 그 때나 지금이나 사상연 패거리들의
당동벌이는 조금도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그들은 겉으로는 국가와 국민을 들먹이지만 실제로는
기득권의 카르텔일 뿐이다.
같은 패거리들끼리는 '우리 식구'라며 서로를 보듬어
주는 인적 카르텔을 형성해 서로의 밥그릇을 챙겨주는
짬짜미 품앗이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해 나간다.
더욱 황당한 것은 그런 속물적 행태를 보이면서도
그들은 결코 미안해 하거나 부끄러워 하긴커녕
"뭐가 문제냐?"며 되레 큰 소리를 치는 것이다.
죄책감도 없고 부끄러움도 모른다.
수오지심의 실종이다.
無羞惡之心 非人也 (무 수오지심 비 인야).
맹자는 수오지심이 없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사상연 패거리들은 사람이 아닌
사람이다.
君子周而不比 (군자주이불비)
小人比而不周 (소인비이불주)
군자는 두루 어울리고 편을 나누지 않지만,
소인은 편을 가르고 두루 어울리지 않는다.
조직의 리더는 자신의 뜻과 같지 않더라도
귀를 열어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며 소통하는
포용력을 지녀야 한다.
우리나라 최고의 리더는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아랫사람들이 편 가르기를 하더라도
"나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라고 하면서 그들을
말려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대통령부터 자신과 코드가 맞는
사람만을 챙기는 편 가르기를 하고 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기를 스스로 거부하는 셈이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 날에는 청군과 백군으로 나누어
"우리 편아 잘해라. 저쪽 편도 잘해라. 우리들은 다 같은
새 나라의 어린이" 하는 노래를 부르고 깃발을 흔들며
응원을 했던 기억이 난다.
만일 지금 이 나라의 사상연 패거리들이 그런 광경을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얘야, 아니다. 우리 편만 잘해야지. 저쪽 편은 우리의
적이야"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는 아이에게 물을 것이다.
"너는 도대체 어느 편이니? 우리 편 맞아?"
그 때 우리가 다 같은 새 나라의 어린이였듯, 지금의
우리는 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
나는 2016년 말 광화문 광장에서 최순실 구속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며 촛불을 들었고,
2019년 10월에는 같은 장소에서 조국 구속과 문재인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태극기를 들었다.
서로 대립되는 성격의 두 집회에 모두 참가한 것에 대해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내가 촛불을 들고 태극기를 든 것이 정치이념, 사상연에
따른 행동이 아니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건전한
시민의식과 상식을 바탕으로 한 행위였기 때문이다.
궁하면 통한다고, 당동벌이 행태를 멈추고 상생할 수
있다면 국론 분열의 상징이었던 촛불과 태극기도
나라 발전의 시너지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지금의 패거리 문화로는 위기와 갈등을 극복할 수 없다.
남을 바꾸려 하지 말고 자신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 힘을 가진 편에서 먼저, 더 큰 변화와 반성,
그리고 양보가 있어야 한다.
총선이 이제 꼭 이십 일 남았다.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사상연 패거리들의 당동벌이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늘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고, 번번히 실망하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한 번 희망을 걸어본다.
패거리 문화에 함몰되지 않은 사람다운 사람,
수오지심이 있는 사람이 많이 당선되기를...
클래식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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