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은유와 감성의 언어로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소통의 도구이다.
어떤 이는 "시는 가장 짧은 문학이다"라고 정의했는데,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시는 다른 어떤 문학 장르보다
경제적이다.
시는 분량이 적어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시를 이야기할 때는 공자와 시경(詩經)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시'라는 단어도
시경에서 유래된 것이다.
시경은 공자가 고대 중국에서 전래되어 오던 시 가운데
삼백여 편을 수집해 엮은 책으로,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이라고 할 수 있다.
시경은 처음에는 '시'로 불렸으나 한 무제 때 유학이
통치이념으로 채택되면서 유교 경전의 '경'자를 붙여
'시경'으로 불리게 되었다.
詩三百 一言以蔽之 曰思無邪
(시삼백 일언이폐지 왈 사무사)
시경 삼백 편의 시를 한마디로 말하면
생각함에 사특함이 없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좀 더 쉽게 풀이하자면 시경의 시는 사람들을
진실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뜻이다.
사무사는 공자가 시경에 수록한 삼백여 편의 시를
선정한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不學詩 無以言 (불학시 무이언)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공자가 아들 공리에게 했던 말이다.
시를 배우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의 소통에 어려움이
생긴다는 의미로, 일상생활에서 시가 그 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
공자는 또한 "시를 좋아하면 호선오악(好善惡惡),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게 된다"고도 했다.
서양에서 최고(最古)의 시인은 고대 그리스의
호메로스라고 할 수 있으며, 그는 트로이전쟁을
배경으로 한 장편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썼다.
호메로스는 장님이었다고 하는데, 이천 오백여 년 전의
열악한 생활환경 속에서 장님이 그런 장편 서사시를
남겼다는 사실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시인은 가슴으로 말하는 사람이다.
시인을 곡비(哭婢)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시인이
다른 사람의 감정을 대신 표현해 주는 사람이라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원래 곡비는 조선시대 상갓집에서 힘든 상주들을 대신해
곡(哭)을 해주던 전문 곡 소리꾼을 일컫는 말이었다.
시인은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사람이다.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브레이크는 "시인은
들꽃에서 천국을 보고, 모래 한 알에서 우주를 보며,
찰나에서 영원을 보는 사람"이라고 했다.
시인은 사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사람이다.
장석주 시인은 평범한 대추 한 알이 결실을 위해
감내해야 했던 수고로움을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라고
노래했다.
시는 읽는 사람 입장에서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
당나라 때 장한가 비파행 등 3천8백여 편의 시를 남긴
시인 백거이(낙천)는 고대 중국 문학가 가운데 시를
가장 쉽게 쓴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시를 쓴 후에 이웃에 사는 노파에게 읽어주고
그 노파가 이해할 때까지 시를 고쳤다고 한다.
그래서 백거이의 시에는 다른 사람의 주석이 거의 없다.
시를 읽으면 바로 이해가 되므로 별도의 주석이
불필요했던 것이다.
시를 쓸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단지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밝고 생기가 도는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시를 읽으면 무엇보다 감정이 풍부해지고 정서적으로
안정이 된다. 시 읽기는 현대인들이 일상 속에서
소홀히 했던 내면을 가꾸는 좋은 방법이다.
시에는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절제되고 함축적인
표현과 은유가 많기 때문에 시를 읽으면 어휘력과
표현력도 좋아질 수 있다.
칠십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시를 천 편 이상 외우고
있다는 노인을 소개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는 시를 읽고 외우면 노년의 우울감을 떨칠 수 있고,
치매의 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조선시대 때는 시경에 담긴 삼백여 편의 시를 거뜬히
외우는 선비들이 많았다고 한다.
나도 한 동안 등한시했던 시 읽기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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