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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단상

교육, 가르치는 일

물아일체 2020. 2. 21. 08:21

동창 중에 교편을 잡았던 친구들이 제법 많다.

이제는 그들도 대학 강단에 선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은퇴를 했다.

나는 동창 모임에서 어쩌다 그들을 만나게 되면

다른 친구들과는 조금은 다른 느낌을 갖게 된다.

물론 교직도 하나의 직업이겠지만, 아이들의 장래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 노력했을 친구들의 삶에

감사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기업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친구들에게는

그냥 자연스럽게 이름을 부르지만, 교직에 있던

친구들에게는 "정 교장", "진 교장" 하며 옛 직함을

붙여 부를 때가 종종 있는데, 그렇게 부르는 것이

그들의 지난 노고를 다소나마 위로하는 것 같아서

나도 기분이 좋다.

 

得天下英才而敎育之 (득천하영재이교육지)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일은 맹자가 말한

군자삼락의 하나이다.

맹자가 생각하는 군자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지혜를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사람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교육'이라는 단어도 맹자의

이 문장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맹자는 영재들을 가르치는 일을 군자삼락의 하나로

꼽으면서 천하의 왕 노릇 하는 것은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에 들지 못한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王天下不與存焉 왕천하불여존언)

군자삼락의 나머지 두 가지는 부모형제가 무탈한 것과

하늘과 사람들에게 부끄러움 없이 사는 일이다.

(父母俱存 兄弟無故 부모구존 형제무고,

仰不愧於天 符不怍於人 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

 

憐兒多與棒 憎兒多與食 (연아다여봉 증아다여식)
아이를 귀하게 여기거든 매를 많이 주고,
아이를 미워하거든 먹을 것을 많이 주어라

 

명심보감 훈자(訓子)편에 나오는 문장이다.

가르치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교편(敎鞭)'이라는

단어는 원래 학생을 가르칠 때 훈계를 위해 사용하는

채찍 즉, 서당 등에서 쓰던 회초리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교육과 회초리가 같은 의미로 사용되어 온 것이다.

아이들에게 사랑은 베풀되 버릇없이 키워서는 안 된다.

서양에도 '매를 아끼면 아이를 그르친다(Spare the rod

and spoil the child.)'라는 속담이 있다.

심심찮게 아이들에 대한 교사의 체벌이 뉴스가 되기도

하는데, 문제는 그 체벌에 아이의 장래를 걱정하는

사랑이 담겨 있느냐 하는 것이다.

 

學然後知不足 敎然後知困 (학연후지부족 교연후지곤)

배운 연후에 부족함을 알고,

가르쳐 본 뒤에야 어려움을 안다.

 

예기에 나오는 글귀이다.

남에게서 배우는 것보다 남을 가르치는 일은

두 배, 세 배의 노력을 필요로 하고 힘이 든다.

교학상장(敎學相長), 가르치고 배우면서 스승과 제자가

함께 성장한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가르침 또한

배움이다.

 

父子之間不責善 (부자지간불책선)

아버지와 자식 사이에는 완전하기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

 

맹자에 나오는 글로 아버지와 자식이 서로 완전하기를

요구하면 부자간의 의리를 해치게 되고 결국은 서로를

미워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아버지와 자식은 논리적으로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는 사이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자식을 직접 가르칠 경우 아버지는 자식에게

반드시 정도(正道) , 바른 도리로 할 것을 요구하는데,

자신이 요구한 대로 실행이 되지 않으면 자식에게

화를 내게 되어 서로의 마음을 다치게 된다.

자식 입장에서도 아버지가 나에게 정도를 가르친다고

하지만, 아버지 역시 때로는 바르게 실천하지 않을 때가

있다고 하면서 아버지와 자식이 서로 책망하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옛날부터 자식을 가르칠 때는 역자이교지

(易子而敎之) 또는 교자(交子) 라고 하여 자기가 직접

가르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자식과 바꿔서 가르쳐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책망하거나 마음 상할 일이

생기지 않게 했다.

이러한 옛 사람들의 전통은 오늘날 일부 상류계층에서

유행한다는 스펙 품앗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靑出於藍而靑於藍 (청출어람이청어람)

氷水爲之而寒於水 (빙수위지이한어수)

푸른색은 쪽에서 뽑아냈지만 쪽보다 더 푸르고

얼음은 물로 만들어졌지만 물보다 더 차갑다.

 

순자의 권학문에 나오는 문장이다.

줄인 말인 '청출어람 빙한어수(靑出於藍 氷寒於水)'

보다 널리 쓰이는데,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나다는

의미이다.

제자를 가르치는 스승이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때를

표현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君師父一體 (군사부일체)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낳아 주고, 가르쳐 주고,

먹여 주는 등 비록 방식은 다르지만 나를 있게 해준

은혜가 같기에 한결같이 섬겨야 할 대상이라는 의미로

소학에 나오는 말이다.

 

요즘 교육 현장에서는 학부모와 교사 간 불신의 골이

깊다. 학부모들은 교사는 있어도 스승은 없다며 교사를

불신하는 반면, 교사들은 학부모들의 불신과 간섭으로

교권이 침해 당한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이러한 상호불신의 결과로 교사들은 자부심과 긍지를

갖기 어렵게 되었고, 가르치는 일에 대한 사랑과 열정도

줄어 그 피해는 온전히 학생들이 본다고 하겠다.

 

알에서 병아리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알 속의 새끼와

밖에 있는 어미가 동시에 알껍데기를 쪼는 줄탁동기

(啄同機)의 아름다운 순간이 있어야 한다.  

교육에 있어서도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줄탁동기가 있어야만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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