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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단상

포노 사피엔스가 잃어버리는 것들

물아일체 2020. 1. 22. 09:37


이제 스마트폰 하나면 웬만한 일들은 다 해결되는

세상이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이 없으면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이렇듯 스마트폰을 마치 몸의 일부처럼 사용하게 된

현대의 신인류를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라고

부른다.

 

포노 사피엔스는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스마트폰 없이는 잠시도 살 수 없게 된 사람들을

종전의 호모 사피엔스에 빗대어 부른 데서 비롯된

말이다.

태초에 하느님은 호모 사피엔스를 창조했고,

스티브 잡스는 포노 사피엔스를 창조했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데카르트의

명언도 포노 사피엔스에게는 "나는 연결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로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스마트폰에 의한 전 세계 수십억 사람들의 연결과

소통은 이 시대의 흐름을 특징짓는 최대의 화두가

되고 있다.

 

포노 사피엔스는 다양한 신조어도 만들어 내고 있다.

스마트폰과 늘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은 잠시라도 몸과

스마트폰이 분리되면 불안감과 초조함 심한 경우

공포심까지 느끼게 되었는데, 이런 증상을 노모포비아

(nomophobia)라고 한다.

이는 노(no), 모바일폰(mobilephone)에 두려움 또는

공포를 의미하는 포비아(phobia)가 합쳐진 신조어이다.

 

스몸비(smombie)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길을 걷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스마트폰(smartphone)

좀비(zombie)의 합성어이다.

중국에서는 스마트폰을 보느라 고개를 항상 숙이고

지내는 젊은이들을 저두족(低頭族)이라 부르기도 한다.

 

요즘에는 다른 사람과 같이 있는 자리에서도 상대방의

존재를 무시하는 듯 관심을 두지 않고 스마트폰에

열중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을 가리켜 퍼빙(phubbing)족이라 하는데,

(phone)무시한다는 의미의 스너빙(snubbing)

조합된 말이다.

 

삶의 필수품이 된 스마트폰이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침은 부족함만 못한 측면도 있게 마련이다.

포노 사피엔스들은 스마트폰의 편리함과 유용성을

얻는 대신에 몇몇 소중한 것들을 잃어가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대화와 사색이라 할 수 있으며,

독서와 글 쓰기도 차츰 사람들에게서 멀어지는 것 같다.

 

相識滿天下 知心能凡人 (상식만천하 지심능범인)

비록 알고 지내는 사람이 이 세상에 가득 차 있다 해도

마음까지 알아 주는 사람은 무릇 몇이나 될까.

 

對面共話 心隔千山 (대면공화 심격천산)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마음은 천 개의 산이 놓여있는 것 만큼 멀다.

 

의사소통의 형식화을 지적하는 문장이다.

식당이나 찻집에 가보면 상대방과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기 보다는 스마트폰에 눈길을 더 주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마음 따로 몸 따로인 사람들은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고 대화하지 못한다.

 

일부 청소년들은 스마트폰 문자로 소통하는 일에

익숙하다 보니 실제로 사람을 만나 대화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디지털 말더듬이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하루에도 적지 않은 문자를

주고 받으며 소통을 한다고 하지만, 의례적 형식적인

메시지가 많다.

스마트폰이 오히려 진정한 대화의 부재를 초래하고

사람들을 더욱 외로움과 고립감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시대가 변해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정이 통해야 한다.

디지털 세상이 심화될수록 얼굴을 마주하고 나누는

대화가 필요하다.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게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학습과 사색의 균형을 강조하는 글귀이다.

학습과 사색은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

배움을 통해 마음이든 행동이든 변화를 가져오려면

반드시 사색의 과정을 거쳐 자기 것으로 체득화 해야

한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든 잠깐의 짬이라도 나면 주저 없이

스마트폰을 꺼내는 사람들에게 사색을 위한 시간은

없다.

사색을 하지 않는 사람은 충동적이고 주변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며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가 없다.

슈바이쩌는 "사색의 포기는 정신의 파산선고이다"라고

했다.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사색의 시간을 갖도록 하자.

 

스마트폰은 이제 거부할 수 없는 새로운 문명이고

문화이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인간을 소외시키고 지배하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의

행복을 더해주는 스마트폰이 되도록 디지털과 아날로그,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적절한 조화와 균형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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