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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단상

권도(權道), 돌아가는 길

물아일체 2019. 9. 15. 18:37

권력, 권세 등의 단어에 쓰이는 한자 권()은 저울,

저울추 또는 저울질을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따라서 권력과 권세의 본래 기능은 힘과 세력을

저울질하여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저울은 거래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물건이다.

옛날에는 저울을 가지고 장난을 쳐 사람을 속이는 일이

많았는데, 오늘날에는 권력과 권세를 가지고 편법,

탈법을 저지르고 특혜를 누림으로써 공정성을 해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 정도(正道)와 권도(權道) >

 

인간이 살아가는 도에는 정도와 권도가 있다.

정도는 말 그대로 사람으로서 당연히 걸어가야 할

바른 길이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다른 길을 선택해

돌아가야 할 경우도 있는데, 그것이 권도이다.

 

정도는 명분에 입각한 최선책이라 할 수 있고,

권도는 현실적 필요성을 고려한 차선책이라 할 수 있다.

 

< 맹자의 권도론(權道論) >

 

저울질을 통해 상황에 맞는 유연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맹자의 권도론이다.

 

맹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제나라 대부 순우곤이 물었다.

"남녀가 손으로 물건을 직접 주고받지 않는 것

(男女授受不親, 남녀수수불친)이 정도인가?"

 

맹자가 "그것이 정도이다."라고 대답하자 순우곤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형수가 물에 빠져 손을 내밀어 구해달라고

하면 정도가 아니기 때문에 거절해야 하는가?"

 

맹자는 "형수의 손을 잡아 구해야 한다."고 하면서

부연 설명을 했다.

"남녀 간에 손을 잡지 않는 것이 정도이지만, 물에 빠진

형수에게 손을 내밀어 구원하는 것은 권도이다.

왜냐하면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 굴원의 어부사(漁父辭) >

 

초나라의 정치가이자 시인인 굴원이 간신들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추방되어 강호를 떠도는데 한 어부가 그에게

물었다. "무슨 까닭으로 이 지경이 되셨습니까?"

 

굴원이 대답했다.

擧世皆濁 我獨淸 (거세개탁 아독청)

衆人皆醉 我獨醒 (중인개취 아독성)

온 세상이 모두 혼탁한데 나만 홀로 깨끗하고,

뭇사람들은 모두 취해 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도다.

 

굴원의 말을 들은 어부는 노를 저어 떠나가며 노래로써

말했다.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창랑지수청혜 가이탁오영)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창랑지수탁혜 가이탁오족)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 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탁하면 내 발을 씻으리.

 

굴원은 물고기 밥이 될지언정 세속에 몸을 더럽힐 수

없다며 멱라수에 빠져 죽었고, 사람들은 굴원이 죽은

음력 5 5일을 단오라 하여 그를 추모해 오고 있다.

 

고결함을 지키기 위해 세상과의 부조화에서 오는

고통을 감내하며 굴원이 걸으려 했던 길은 정도이고,

세상과 화합하고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 어부의 길은

권도라고 할 수 있다.

 

< 미생의 포주이사(抱柱而死) >

 

노나라 사람 미생은 어떤 여자와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물이

불어나 위험한 상황이 되었지만 미생은 자리를 뜨지

않고 다리 기둥을 껴안은 채 버티다가 결국 물에 빠져

죽었다.

 

여기서 유래한 고사성어 포주이사(抱柱而死) 또는

미생지신(尾生之信) 정도를 지키려 했던 사람의

본보기로 삼기도 하지만, 상황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한 융통성 없는 사람으로 비하되기도 한다.

 

우리는 살아 가면서 정도를 추구해야 할 때가 있고,

정도 보다 권도를 선택해야 할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처럼 이념과 계층, 세대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는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권도의 지혜가 더욱

절실하다고 하겠다.

 

최근 한 고위 공직자의 임명을 둘러싸고 나라가 두 동강

나다시피 했다. 그를 지지하는 진영에서는 개혁의

중요성과 적임자임을 강변하지만 반대하는 쪽에서는

개혁을 당해야 할 사람이 개혁을 추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한다.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개혁을 주도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우선되어야 하고, 국민이 수긍할

만한 일관성 있는 원칙과 기준이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많은 국민의 의구심과 비아냥을 받는 사람이

내로남불의 이중적 잣대로 밀어 부치는 개혁은 정도가

아님은 물론 권도 조차도 되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위기국면 해소라는 사적 이익을 위한

저급한 저울질이자 권력의 농단으로 비춰질 뿐이다.

 

알은 자기 스스로 깨면 생명체가 되지만, 다른 사람에

의해 깨지면 요리감이 된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상황의

변화를 인정하고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는 용기를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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