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나라에는 정치, 경제, 문화 등
어느 분야를 둘러 보아도 진정으로 존경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게 된다.
적지 않은 정치인들은 후안무치한 언행과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의 이중적 잣대로 국민을 농락하고 있다.
재계도 마찬가지이다.
일부 기업인들의 인성과 행태를 보면
졸부, 천민 자본주의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
순수를 기치로 해야 할 문화, 예술, 체육분야의
몇몇 인사들도 도덕성에서 별반 나을 것이 없다.
비록 그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높은 지위에 오르고
이름은 날렸는지 몰라도 한 인간으로서 성공했다고
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지도층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얼마나 절실한가 느끼게 하는 현실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사회적 지위와 명예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말하는데, 고대 로마시대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정신에서
비롯되었다.
지도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계층간의 대립을
완화하는 최고의 덕목으로, 특히 전쟁과 같은
위기상황에서는 국민을 통합하고 역량을 모으는데
크게 기여한다.
14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당시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치열한 전투 끝에
프랑스의 항구도시 칼레를 점령하게 되었고,
칼레의 시민들은 모두 처형 당할 위기에 놓였다.
이때 영국 왕은 칼레의 지도자급 인사 여섯 명을 넘기면
나머지 시민들은 살려주겠다고 했다.
이에 피에르라는 부자가 먼저 자원했고,
이어 고위 관료와 변호사 등 상류층 인사 여섯 명이
처형을 각오하고 스스로 목에 밧줄을 감고
영국 왕 앞으로 나갔다.
다행히 임신 중인 왕비의 간청으로 영국 왕은
이들의 목숨을 살려주었다.
이후 이들 여섯 명의 용기와 희생정신은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상징이 되었으며,
오뀌스트 로뎅은 그들의 모습을 '칼레의 시민'
조각상으로 형상화했다.
君子有終身之憂 無一朝之患
(군자유종신지우, 무일조지환)
군자에게는 종신지우가 있을 뿐 일조지환은 없다.
동양에서도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오래 전부터
강조되어 왔다.
맹자는 백성들을 위해 헌신하는 지도자로서
평생 가슴에 간직해야 할 근심을
종신지우(終身之憂)라고 했다.
종신지우에 대비되는 개념이 일조지환(一朝之患)인데,
이는 돈과 권력 같은 개인의 안위와 출세에 관한
걱정이다.
맹자는 잠시 왔다 사라지는 일조지환의 근심은
지도자가 가질 걱정거리가 못 된다고 했다.
우리나라 역사에도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인물들이 적지 않다.
임진왜란 당시 임금은 궁궐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을 갔지만 벼슬 자리에 있지도 않던
조선의 선비들은 가산을 정리해 의병을 일으켰다.
정조 때 제주도의 거상 김만덕은 흉년에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전 재산으로 쌀을 사서 나눠 주었다.
경주 최씨 가문은 6훈(訓)이라는 가훈을 대대로
계승하며 실천했는데, 재산은 만 석을 넘지 마라,
흉년에는 땅을 사지 마라, 며느리들은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등이 그것이다.
일제시대에는 이회영, 이상룡 같은 우국지사들이
명문 가문의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전 재산을 처분해
독립운동을 하며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人固有一死 死有重於泰山 或輕於鴻毛
(인고유일사, 사유중어태산, 혹경어홍모)
사람은 누구나 한번 죽지만,
그 죽음에는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도 있고,
깃털 보다 가벼운 죽음도 있다.
중국 한나라 시대 사기의 저자인 사마천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했던 말이다.
어떤 죽음을 맞는가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삶이
담보한다.
살아서 영화를 누릴 것인가 아니면 죽어서 이름을
남길 것인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한국전쟁 때 미군 장성의 아들들이 142명이나 참전해
35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본인 또는 자식의 병역을
면탈해 온 우리나라 지도층들은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것이다.
공자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물음을
늘 자신에게 던지며 사는 사람은
인생을 허투루 살지 않는다고 했다.
경제는 어려워지고 사회적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부와 계층이 고착화되는 사회구조 속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솔선수범하는
우리나라 지도층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싶다.
클래식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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