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변은 쾌면과 함께 건강한 삶의 필수 조건이다.
마음이든 몸이든 비워야만 채울 수가 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리현상 가운데 하나인
배설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예로부터 뒷간, 측간,
통시, 똥통, 똥간, 작은 집, 변소 등으로 다양하게
불려 왔으며 최근들어 화장실이 보편적인 용어로
자리를 잡았다.
절에서는 화장실을 해우소(解憂所)라고 부르는데,
근심을 풀어주는 곳이라는 뜻이다.
어렵사리 참았던 용변을 보기 위해 찾은 해우소는
무엇에도 견줄 수 없는 극락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적절한 표현인 듯 하다.
옛날 푸세식 변소를 사용하며 자란 세대에게
오늘날의 수세식, 좌식, 게다가 비데까지 설치된
화장실은 그야말로 꿈같은 생활이다.
재래식 변소에 쪼그리고 앉았다가 주머니 속의
동전이나 라이터 같은 소지품을 밑으로 빠뜨려 본
경험이 한 두 번씩은 있을 것이다.
요즘 대부분의 아파트에는 두 개의 화장실이 있지만
옛날 주택은 대가족에 화장실은 하나여서 아침이면
먼저 일을 보려고 경쟁을 하기도 했고, 빨리 나오라고
문을 두드리며 재촉을 하는 진풍경도 있었다.
화장실은 그 오랜 역사 만큼이나 연관된 일화나 고사
또한 많이 전해온다.
귀신 가운데 가장 무서운 통시귀신.
옛날 사람들은 부엌, 우물, 장독대, 대문, 통시(변소) 등
집안 곳곳에 귀신들이 있다고 믿었는데, 그 귀신 가운데
통시귀신이 가장 무섭다고 했다. 이유인 즉슨 사람들이
통시에서 급사하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고혈압이 있는 사람이 통시에서 급하게
힘을 주며 일을 보다가 순간적으로 혈압이 높아져
뇌출혈 또는 급성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한 것으로
짐작되는데, 의학이 발달하지 못하고 지식이 부족했던
옛날에는 통시귀신이 잡아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통시귀신에 대한 무서움은 "빨간 보자기를 줄까?
파란 보자기를 줄까?" 하는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에게까지 전해져 아이들은 밤에 변소에
가는 것을 여간 무서워 하지 않았다.
옛사람들은 통시귀신의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통시에 앉아서 밖을 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통시의 문을 아예 만들지 않거나 낮고 작게 만들기도
했다.
측간의 쥐와 곳간의 쥐.
전국시대 초나라 출신인 이사는 진나라 승상이 되어
진시황을 보좌해 전국 통일을 이루고 여러 개혁정책을
추진한 인물이다.
이사가 초나라에서 하급 관리로 있던 젊은 시절
하루는 측간(변소)에 갔더니 빼빼 마른 쥐가
더러운 것을 먹고 있다가 사람을 보고 놀라 황급히
달아났다. 또 한 번은 곡식 창고엘 갔는데 그 곳에
있던 살찐 쥐들은 이사를 보고도 놀라거나 도망치지
않고 여유롭게 곡식을 먹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이사는 "사람의 뛰어남과 못남 또한
저 쥐들과 같다. 자신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뿐이다."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 후 이사는 초나라 하급 관리직을 그만두고
순자의 문하생이 되어 천하를 다스리는 법을 배웠고,
신흥 강국 진나라에 출사해 진시황의 책사가 되었다.
髀肉之嘆 (비육지탄)
할 일 없이 놀고 먹기만 해 넓적다리에 살만 찌는
것을 한탄한다는 뜻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지 못하고
헛되이 세월만 보내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삼국지에서 유비는 조조에게 쫓겨 이곳저곳을 떠돌다
형주 자사 유표에게 의탁해 세월을 보냈다.
어느 날 유표와 술잔을 기울이다가 변소에 간 유비는
바지를 내리고 앉아 용변을 보며 살이 두둑하게 오른
자신의 넓적다리를 보았다. 문득 신세가 한심스러워진
유비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용변을 마치고 돌아온 유비에게 유표가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소?”
유비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예전에는 몸이 하루도 말 안장을 떠난 적이 없어
넓적다리에 살이 오를 틈이 없었는데, 이제 보니
살이 두둑이 올라 있습니다. 말을 타고 전장을
누빈 지 오래됐기 때문인가 봅니다. 헛되이 세월을
보내며 몸마저 늙으니 서러움에 눈물이 났습니다.”
好人同行 如霧路中, 無識人同行 如厠中坐
(호인동행 여무로중, 무식인동행 여측중좌)
좋은 사람과 함께 가면 마치 안개 속을 걷는 것 같아
그의 인품과 향기가 몸에 배어들지만,
무식한 사람과 같이 가면 뒷간에 앉아 있는 것처럼
고약한 냄새가 몸에 밴다.
옛날 뒷간은 냄새가 심해 얼른 일을 마치고 나와야
했지만, 요즈음 관리가 잘 된 화장실에서는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깨끗하고 쾌적한
화장실 좌변기에 앉아 잠시 눈을 붙이거나 사색에
잠기기도 하고 심지어 음료수나 간식을 먹기도
한다고 하니 명심보감의 좋은 문장이 실감나지
않을 만큼 화장실도 많이 변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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