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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단상

국민과 더불어, 국민을 위하여

물아일체 2018. 10. 8. 10:07

얼마 헌법재판소가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우리나라 국민은 현행 헌법 130 조문

가운데 헌법 1조를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헌법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1항과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2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같은 설문 결과는 건국 이후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위정자들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섬기려 하지 않고

통치의 대상으로 전락시켜 다스리려 했던 영향이

컸으리라 짐작된다.

 

정치인들은 입만 열면 "국민을 위하여..." 라고

말하지만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국민은

거의 없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연설의 일부로

민주주의를 가장 잘 표현한 말로 인정받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짧은 글귀에 공감하는 이유는

국가권력의 원천이 국민이라는 주권재민사상과

정치는 국민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민본사상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王者以民爲天 民以食爲天

(왕자이민위천 민이식위천)

임금의 하늘은 백성이고, 백성의 하늘은 밥이다.

 

임금이 백성이라는 하늘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거나,

백성의 하늘인 , 경제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면

백성들은 이상 그를 임금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옛날부터 동양의 군주들과 사상가들은 통치자들이

백성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 왔다.

 

맹자는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 한다는 여민동락

(與民同樂) 이상적인 통치자의 기준으로 제시했다.

맹자가 주장한 왕도정치의 해법이 여민동락으로

바탕에는 민본사상이 깔려 있는 것이다.

君舟民水, 水則載舟, 水則覆舟

(군주민수, 수즉재주, 수즉복주)

임금은 배이고,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

 

당 태종의 충직한 신하 위징은 순자의 이 구절을

인용해 간언을 했고, 당 태종은 그를 받아들여 선정을

베풀고 정관지치(貞觀之治)라 불리는 태평성대를

이뤘다.

 

당 태종이 백성의 관점에서 정치를 하려고 노력했던

모습을  보여주는 재미있는 비유의 말이 있다.

만일 군주가 백성들의 이익을 희생시켜 가면서

자신의 욕심을 채운다면, 마치 자기 넓적다리를 베어

배를 채우는 것과 같아서 배는 부를지언정

곧 죽게 될 것이다."

 

현종 역시 재위 초기에 군수천하비(君瘠天下肥),

'임금이 수척해지면 백성은 살찐다'며 재상인 한휴의

충간을 행동으로 옮겨 개원지치(開元之治)라는

칭송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태종과 현종은 충신인 위징과 한휴가

죽고 환란에 빠져 특정한 신하에 의존하는

민본정치의 한계를 드러냈다.

 

조선 왕조의 설계자인 정도전의 사상은 나라의

모든 일에 있어 백성을 근본에 둔다는 민본사상으로

요약할 있다.

 

그가 민본을 화두로 삼게 된 것은 전라도 나주에서

3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며 백성들의 삶을 직접

목격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정도전의 민본사상은 아쉽게도 그가 1

왕자의 난 때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함으로써

결실을 맺지 못했다.

 

지금은 재개발로 인해 옛 모습은 다 사라지고

명칭만 남았지만, 종로대로 옆에는 서민들이 즐겨 찾던

피맛길이라는 저렴한 음식점 골목이 있었다.

 

정도전은 서울을 설계하면서 피맛길을 만들었는데,

이는 종로 거리에 고관대작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관계로 일반 백성들이 마음 편히 다닐 수 없는 사정을

감안한 것이다.

작지만 백성의 편의를 생각한 민본정신이 깃든

사례이다.

 

세종은 민본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성군으로,

훈민정음 창제는 민본 위민정신이 구현된 최고의

성과물이라 있다.

 

세종은 민본정신을 바탕으로 정치와 경제, 사회,

과학,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치적을 이뤘는데,

백성과 함께 즐긴다는 의미의 음악인 여민락

(與民樂) 만들기도 했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 민본사상가인 정약용은

전라도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관리들의

부정부패와 백성들에 대한 해악을 비판하고

개혁 방안을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저서에 담았다.

 

지난해  문재인 정권은 출범하자마자 청와대

비서진들이 근무하는 건물 이름을 위민관에서

여민관으로 바꿨다고 한다.

 

소시민의 상식으로 위민이든 여민이든

좋은 의미라고 생각되는데, 구태여 바꿀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여민'은 국민과 함께 한다는 과정과 절차에 좀 더

비중을 두는 반면, '위민'은 국민을 위한다는 목적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는 개념이라고 한.

따라서 여민과 위민은 옳고 그름이나, 더 좋고 덜 좋은

관계가 아니라 상호 조화를 이뤄야 할 통치의

한 측면이라고 하겠다.

 

과거 정권에서 바꾼 명칭을 원상회복한 것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국민들은 그런 간판의 변경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말이나 명칭이 아니라 행동과 정책으로 진정한 위민과

여민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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