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침에는 밥을 먹지 않고 바나나 한 개, 시리얼과 우유
한 사발 그리고 삶은 계란 두 개를 먹는다.
그런데 삶은 계란을 먹기 위해 껍질을 벗길 때면 미안한
마음이 자주 든다.
그 미안함은 병아리가 되어야 할 생명의 씨앗인 계란을
먹기 때문이 아니다.
어차피 내가 먹는 계란은 양계장 산란계가 낳은
무정란이기에 그런 미안함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의 미안함은 계란을 낳은 양계장의 닭들에 대한
것이다.
TV 화면에서 본 양계장의 좁디좁은 공간에서 밀식사육
되는 닭들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마치 기계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생명체인
닭에서 계란을 뽑아내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으며 지내는
닭이 낳은 계란이고 보니 맛이나 영양도 많이 떨어질
것이다.
양계장에서 밀식사육 되는 닭의 계란과 노지에 방목하거나
횃대가 설치되고 흙 목욕 같은 어느 정도의 활동이 가능한
공간에서 지내는 닭의 계란은 그 성분에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슬플 때 흘리는 눈물과 기쁠 때 흘리는
눈물의 성분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눈에는 하찮게 보일지라도 모든 생명의 삶은
존중되고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최근 애완동물을 중심으로 조금씩이나마 관심
갖기 시작한 동물복지의 개념이 닭과 같은 가축에게도
적용되면 좋겠다.
쾌적한 환경에서 지내게 된 닭들은 품질 좋은 계란을
더 많이 생산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보답할 것이다.
둥지에서 크고 실한 알을 낳은 뒤 자랑스럽게
"꼬꼬댁 꼭꼬"를 외치는 닭들의 건강하고 도도한
모습은 보는 사람도 즐겁다.
닭은 여명을 알리고, 빛의 도래를 예고하는 동물이다.
사람들은 닭이 울면 어둠이 끝나고, 새벽이 와 밤을
지배하던 귀신이 물러간다고 생각해 상서롭고 신비한
길조로 여겼다.
경주 계림 숲에서 신라의 시조인 박(朴), 석(昔), 김(金),
삼성(三姓) 가운데 한 명인 김알지의 탄생을 알려준
것도 닭이었다.
닭은 또한 땅을 지켜준다는 십이지신(十二支神) 가운데
유일한 조류 동물로, 오래 전부터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꿩 대신 닭", "닭 잡아 먹고 오리발 내민다"는 일상의
속담이나 '계명구도(鷄鳴狗盜)', '계구우후(鷄口牛後)'
같은 고사성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계명구도는 변변치 못한 재주 또는 천박한 꾀를 써서
남을 속이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제나라 맹상군이 진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닭 울음
소리를 잘 내는 식객과 개 흉내를 내며 도둑질을 잘 하는
식객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 데서 유래했다.
계구우후는 좋은 조직의 말단 보다 좀 쳐지는 조직에서의
리더가 더 낫다는 것을 소 꼬리와 닭 머리에 비유한
말이다.
木鷄之德 (목계지덕)
목계지덕은 마치 나무로 깎아 만든 닭처럼 교만하지
않고, 자기감정을 제어할 줄 알아 부드럽지만 강한 힘을
갖고 있는 최고의 싸움닭의 품성을 의미한다. 장자에
나오는 내용이다.
자신의 광채나 매서운 눈초리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이 쉽게 근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을
목계지덕을 지녔다고 한다.
옛사람들은 닭의 특징을 오덕(五德)으로 표현하여
칭송했다.
머리에 벼슬을 쓰고 있으니 문(文)이오,
날카로운 발톱이 있어 싸움에 능하니 무(武)요,
적을 맞아 물러서지 않으니 용(勇)이며,
모이가 있으면 혼자 먹지 않고 함께 먹으니 인(仁)이오,
때를 놓치지 않고 새벽을 알려주니 신(信)이다.
닭은 전통혼례 초례상에도 등장한다.
신랑 신부가 초례상을 가운데 두고 백년가약을 맺을 때
닭을 청홍 보자기에 싸서 상 위에 놓거나, 어린 동자가
안고 옆에 서 있는다.
이러한 풍습은 닭이 지닌 덕을 배워서 실천하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닭을 길조로 여겼던 때문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학문과 벼슬에 뜻을 둔 선비들은 서재에 닭
그림을 걸어 두었는데, 닭이 입신양명(立身揚名)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요즘 닭들은 새벽이 되어도 울지 않는다고 한다.
주인이 백수가 된 까닭에 새벽에 잠을 깨울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스갯소리이지만 최근 고용사정이 악화되고 실업자가
크게 늘어난 세태를 반영한 것 같아 안타깝다.
사람이든 닭이든 사는 동안 보다 나은 환경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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