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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단상

매미 소리 예찬

물아일체 2018. 8. 8. 15:16


“매앰~매앰~맴-.”
아파트단지 안에 매미 소리가 요란하다.
매미 소리라고 하지만 모든 매미의 소리가 같은 것은 아니고
각자 나름대로의 특색 있는 소리를 내다 보니 마치 매미 소리 합창이나

오케스트라를 듣는 듯 하다.

어떤 사람들은 시끄럽다며 짜증스러워 하기도 하지만
나는 매미 소리가 참 듣기 좋다.
여름 한낮 매미 소리를 들으면 청량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시골에서 지내던 어린 시절 미루나무에 앉은 매미 소리를 들으며
냇가에서 놀던 추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짧게는 이 삼 년, 길게는 칠 팔 년을 어둡고 습한 땅 속에서 참고 기다린 끝에
땅 위의 세상으로 나오지만 채 한 달을 못살고 생을 마감해야 하는
매미들의 운명을 생각하면 그 소리를 차마 미워할 수 없다.

매미는 애처롭게 우는 것일까 아니면 즐겁게 노래하는 것일까?
매미 소리가 울음이라면 기나긴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맞은
이 세상에서의 짧디 짧은 시간에 대한 통한의 울음일 것이다.

매미 소리가 노래라면 그것은 긴 세월을 참고 견딘 끝에 맞은
밝고 아름다운 지상에서의 삶에 대한 기쁨과 환희의 송가일 것이다.

물론 생물학자들은 매미 소리가 단지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암컷을 부르는 소리일 뿐이라고 무심한 설명을 하고 있지만
매미 소리의 정체가 무엇이든 상관은 없다.

그 소리가 울음이라면 네 몸 가득한 슬픔과 한의 응어리가 풀리도록 실컷 울거라.
그 소리가 노래라면 목청껏 원 없이 노래하며 이 여름날의 폭염을 즐기거라.
그것이 짝을 부르는 구애의 소리라면 더욱 열심히 너의 배필을 찾아
얼마 후 이 세상과 작별하는 날 여한이 없도록 하거라.

당분간 폭염은 여전할 것이라는 예보가 있지만,
어차피 머지않아 무더위와 함께 여름은 물러가고 선선한 바람에 가을이 실려 올 것이다.

이제 하루하루 매미 소리는 사그라들고 결국엔 완전히 사라져
한낮의 아파트단지 안은 고요를 되찾게 될 것이다.
그것은 매미들에게는 죽음을 의미한다.


벌써부터 땅에는 수명을 다하고 죽은 매미들의 빈 껍데기들이 눈에 많이 띤다.
매미들의 요란한 소리는 내년에도 들리겠지만
그것은 올해 우리 곁에 있었던 그 매미의 소리는 아니다.

사람들은 매미가 여름 한 철 밖에 살지 못해 일 년의 길이를 알지 못하고

선부지설(不知雪), 겨울의 눈도 모르는 불쌍한 미물이라며 비웃지만

수억 년의 우주 시간에서 보면 백 년도 못사는 우리네 인생도 짧고 무상함은

매미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옛날 중국에서는 매미가 영검한 기운을 지니고 있다 하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옥함이라 부르는 옥으로 만든 매미를 시신의 입에 넣는 풍습이 있었는데,

죽은 사람이 부디 좋은 곳에서 환생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긴 것이다.


()나라 시인 육운은 매미가 학문() 맑음() 염치(廉恥) 검소(儉素) 신의(信義)

다섯 가지의 () 지녔다고 칭찬했다.

매미의 입이 곧게 뻗은 것은 마치 선비의 갓끈이 늘어진 것과 같으므로

선비처럼 학문을 닦았으며,

이슬이나 나무진을 먹고 사니 맑음이고.

곡식이나 채소를 해치지 않으니 염치가 있고,

다른 곤충과 달리 집을 짓지 않고 사니 검소하고,

맞춰 허물 벗고 맞춰 떠날 아니 신의가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매미는 조정 관리들에게 요구되는 덕을 모두 포함하고 있어 군자를 상징한다고 하여

임금과 신료들이 쓰는 관모를 매미의 양 날개를 본떠 만들고 익선관(翼蟬冠)이라 불렀다.


병법서인 삼십육계(三十六計)에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서 매미가 허물을 벗듯

감쪽같이 몸을 빼 도망가는 금선탈각(金蟬脫殼)의 계책을 소개하고 있다.


장자에 나오는 당랑포선(螳螂捕蟬) 고사는 사마귀가 자기 뒤에서 까치가 노려 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앞에 있는 매미를 잡아 먹으려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는 의미로,

앞의 이익만 쫓다가 뒤에 도사린 위험을 모른다는 교훈을 준다.


인터넷을 보니 매미의 오랜 기다림과 세상에서의 짧지만 욕심 부리지 않는 생을 찬양하는
시들이 눈에 띄어 몇 편 읽어보니 재미도 있고 매미에 대한 친근감도 더하게 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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