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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단상

간신론(奸臣論)

물아일체 2018. 8. 6. 10:10

전직 대통령이 잇달아 구속되어 영어(囹圄) 몸이 되는 광경을 지켜 국민들의 마음은

하나같이 착잡했을 것이다.

그리고 궁금했을 것이다.

"어떻게 지경까지 되었을까? 동안 대통령 주변의 머리 좋고 똑똑한 측근 참모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나갈 최고권력자 주변에서 호가호위 하다가 일이 잘못되자 서로 책임을 미루는 모습까지

보이니 그들이야말로 현대판 간신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공자는 "임금에게 대드는 신하 네댓 명만 있으면 사직을 보존한다." 직언하는 충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공자는 "천하의 다스림은 군자가 여럿 모여도 모자라지만, 망치는 것은

소인 하나면 족하다." 하여 소인 간신의 폐해를 지적했는데, 전직 대통령 곁의 비선 실세였던

여인의 경우를 생각하면 공감이 가는 말이다.

 

간신이란 윗사람 또는 조직에 충심이나 능력이 아닌 아첨과 처세로 신임을 얻고,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안위와 사익을 챙기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있다.

 

한나라 때의 석학인 유향은 '육사(六邪)' 하여 사악한 신하를 여섯 가지로 분류했다.

그저 눈치나 살피며 자리를 지키는 ,

군주의 언행에 무조건 칭찬하며 비위를 맞추는 ,

어진 이를 질투해 등용을 막고 상벌을 교란시키는 ,

교묘한 말로 본질을 흐리고 남을 이간질하는 ,

자신의 이익과 권세만을 추구하는 ,

붕당을 지어 군주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뒤로는 군주를 욕하고 다니는 등이 그것인데,

이들 모두를 넓은 의미의 간신이라고 있겠다.

 

芳百歲 遺臭萬年

(유방백세 유취만년)

아름다운 이름과 그 향기는 백 년을 가고,

더러운 이름과 그 악취는 만 년을 간다.

 

역사는 충신과 함께 간신도 기록으로 남겨 후대 사람들로 하여금 교훈과 경계를 삼도록

하고 있다. 특히 간신에 대한 역사의 심판은 엄혹하다.

 

간신으로 찍히게 되면 본인 뿐만 아니라 자손들까지도 치욕 속에 숨어 살아야 한다.

그럼에도 역사를 보면 충신 보다 간신이 훨씬 더 많이 눈에 띤다. 부와 권력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탐욕의 결과일 것이다.

 

춘추시대 제나라 환공에게 자신의 아들을 삶아 요리를 만들어 바치며 아부했던 역아,

초나라 평왕 시절의 비무기, 오나라의 백비, 진나라의 환관 조고와 후한 십상시 등은

나라를 기울게 간신들이다.

 

밖에도 당나라의 이임보, 명나라의 엄숭 간신들은 많았지만 중국인 대다수가 공감하는

대표적 간신은 송나라의 진회라고 있다.

 

진회는 재상까지 지낸 유능한 관리였으나 송나라를 침입한 금나라와 화평을 주장하며

악비 장군 주전론자들을 모함해 죽게 하고, 금나라에 신하의 예와 조공을 바치는

화친조약을 체결했다.

 

그로 인해 진회는 간신이라는 낙인이 찍혀 중국 사람들이 이름에 '()'자를 쓰지 않을 정도로

저주 받은 인물이 되었다.

 

반면에 진회의 모함으로 39세의 젊은 나이에 죽은 악비 장군은 금나라 침입을 여러 차례 물리쳐

제갈공명, 관우와 더불어 충절의 상징이자 군신(軍神)으로 숭배되어 왔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 중국이 진회의 행위가 당시 상황을 고려할 융통성 있고 합리적인 외교적

판단이었다고 재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다민족 국가인 중국의 입장에서 송나라와 금나라의 전쟁도 이민족과의 투쟁이 아니라

민족 내부의 갈등으로 봐야 한다는 정치적 필요성에 따른 것이다.

 

시대가 영웅을 만들 간신 역시 시대의 산물이라고 있다.

특히 정치적 분쟁의 경우 살아남은 승자의 관점에서 기술되는 사례가 많아 충신과 간신의 평가도

시대에 따라 논쟁의 대상이 되곤 한다

 

고려 말의 정몽주는 조선 건국을 반대하다가 태종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인물이고,

정도전은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정도전은 조선의 문묘에 배향되지 못한 반면, 정몽주는 배향되어 역대 임금들이 찾아와

그의 위패 앞에 고개를 숙였다.

 

임금이 되고 보니 정도전 같은 개혁가 보다 정몽주처럼 죽음으로 왕조에 충성하는 사람이

필요하고 좋게 보였던 것이다.

 

군주가 충신과 간신을 명확히 구분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래서 초나라 장왕이 자신의

의도를 감춘 3 동안이나 짐짓 방탕한 생활을 하며 충신과 간신을 가렸다는 불비불명(不飛不鳴)

일화는 흥미롭다.

 

君使臣以禮 臣事君以忠

(군사신이례 신사군이충)

임금이 신하를 예로써 대하면 신하는 임금을 충심으로 섬긴다.

아랫사람을 충신으로 만드는 것도 군주요, 간신으로 만드는 것도 군주이다.

 

“오나라 왕이 검객을 좋아하면 백성들은 칼에 베인 상처가 많고, 초나라 왕이 호리호리한 허리를

좋아하면 궁중에는 굶어 죽는 여자가 많다." 중국 속담이 있다.

“위에서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아래에서는 반드시 그보다 심한 바가 있다.”는 맹자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아랫사람은 절대권력을 가진 윗사람의 성향을 따르게 마련이다.

윗사람은 특정한 아랫사람에 대해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을 드러내는 일에 신중해야 하며,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도록 신경을 써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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