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인(忍)자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이
무색하게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감정을 폭발해 버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자동차가 경적을 울리거나 끼어 들었다고 위험천만한
보복운전을 하고, 아파트 층간 소음 때문에
아래 윗집간의 말다툼이 살인까지 부른다.
상대를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이 부족하고
조급함과 자기 중심적인 사고와 행동으로 인한
결과들이다.
언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듯 참을성이 없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화를 잘 내지 않고 속으로 삭이기만 하여
화병이라는 한국인 고유의 정신질환 명칭까지 생겨났고,
전문가들은 화가 날 때는 무조건 참지 말고 적당히
발산하라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화병 이야기는 듣기 힘들어진 반면에
오히려 화를 참지 못하고 욱하는 감정을 즉시 드러내는
분노조절장애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참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참을 忍(인)자를 보면 마음 心(심) 위에 칼날 刃(인)자가
놓여 있다. 참는다는 것은 심장에 칼날을 갖다 대는 듯한
고통이 따르는 어려운 일이다.
忍一時之忿 免百日之憂 (인일시지분 면백일지우)
한 때의 화를 참고 견디면 백날의 근심을 면한다.
분노 관리 여부에 따라 리더와 조직의 명운이 달라진
경우는 많다. 불 같은 성격은 자신은 물론 조직 전체를
망치게 한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망한 데는 화를 참지
못하는 히틀러의 괴팍한 성격도 일조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삼국지의 장비도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 불운을 자초했다.
성질 급한 장비는 관우를 죽인 오나라에 대한 복수를
준비하면서 부하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다가 부하인
범강과 장달에게 허무한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
역사에는 일시적인 분노와 화를 잘 다스리고, 힘들고
고통스런 날들을 참고 견딘 끝에 좋은 결과를 가져온
일화도 많다.
< 초 장왕의 절영지연(絶纓之宴) >
절영지연이란 갓끈을 끊고 즐기는 연회라는 뜻으로,
남의 잘못에 화가 나더라도 참고 관대하게 용서해주거나
어려움에서 구해주면 반드시 보답이 따른다는
고사성어이다.
초나라 장왕은 신하들을 위로하기 위해 성대하게 연회를
베풀고, 자신의 애첩으로 하여금 시중을 들게 하였다.
밤이 깊었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 촛불이 모두
꺼져버렸다. 그때 어둠 속에서 왕의 애첩이 소리를 질러
누군가 자신의 몸을 건드리는 사람이 있어 그의 갓끈을
잡아 뜯었으니 불을 켜면 누군지 가려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장왕은 촛불을 켜지 말라 하고는 오히려
신하들에게 오늘은 모두 갓끈을 끊어 버리고 실컷
즐기자고 했다. 이에 신하들이 모두 갓끈을 끊어버리고
여흥을 즐겼다.
3년 뒤 초나라가 진(晉)나라와 전쟁을 하는데 한 장수가
선봉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분투한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다. 장왕이 장수에게 "과인은 그대를 잘 대해준
기억이 없는데, 무슨 이유로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고
그리 열심히 싸웠는가?" 물었다.
장수는 3년 전 연회 때 술에 취해 왕의 애첩의 몸에
손을 대는 죽을 죄를 지었는데 왕이 범인을 색출하지
않고 관대하게 용서해 준 은혜를 갚은 것이라 했다.
장왕이 당시에 화를 참지 못하고 애첩의 몸을 만진
사람을 찾아내 처벌했다면 진나라 군대를 물리치기
어려웠을 것이고 춘추오패의 반열에 오르지도 못했을
것이다.
< 진(晋) 문공의 19년 유랑생활 >
진 문공은 왕위 계승을 둘러싼 갈등에 휩싸여
외국으로 피난을 떠나야 했다
문종의 외국 망명생활은 고난에 찬 날들이었다.
아버지가 그를 제거하려 한 데 이어 동생도 그에게
자객을 보냈다. 문전박대를 당하고 놀림거리가 되는
일도 있었으며 먹을 것이 없어 구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공은 19년간 여러 나라를 유랑한 끝에
62세에 드디어 위나라로 돌아와 왕위에 올랐고
춘추오패의 두 번째 패주가 되었다.
< 한신의 과하지욕(胯下之辱) >
한나라의 대장군 한신이 무명시절 동네 불량배의 가랑이
밑을 기었다는 과하지욕 일화는 성공을 위해서는 순간의
치욕을 참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대표적 고사성어이다.
한신은 그로 인해 사타구니 무사라는 놀림을 당하기도
했지만, 훗날 대장군이 된 뒤 그 사내를 찾아내 자신에게
참을 인(忍) 자를 가르쳐 주었다며 돈과 직위를 주기도 했다.
< 상가지구(喪家之狗)의 흥선 대원군 >
고종의 아버지 흥선 대원군은 서슬 퍼런 안동김씨의
세도정치에 상갓집 개 소리를 들어가며 짐짓 방탕한
생활로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철종이 후사 없이 죽자 풍양조씨 조대비의
도움으로 아들을 왕위에 올리고 자신은 대원군이 되어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개혁정치를 주도했다.
삼사일행(三思一行), 세 번 생각하고 한 번 행동한다는
것은 세 번 참는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도저히 참기 힘든 어려운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생각을 바꾸면 언젠가는 그에 대한 보상이 온다.
오른 쪽 뺨을 맞으면 화를 내지 말고 왼쪽 뺨도 내미는
사람이 결국엔 승리하고 웃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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