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회는 에 무려 2천여 번이나 그 이름이 등장할 정도로 한 시대 역사의 주역이었던 인물이다. 그는 부모를 일찍 여의고 과거에 여러 번 응시했으나 번번이 낙방해 불우한 초년을 보냈다. 그는 벼슬도 없이 허송세월 하다가 38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조상들의 음덕으로 관직을 얻는 음서를 통해 벼슬길에 나섰다. 그런데 그에게 주어진 벼슬이라는 것이 태조 이성계가 임금이 되기 전에 머물렀던 개성, 즉 송도의 경덕궁을 지키는 궁지기 자리였다. 송도에서 경덕궁지기 생활을 하고 있던 어느 해 명절 휴일에 개성부 산하 관리들이 송악산 만월대에서 큰 연회를 열었는데, 한명회 역시 고관들과 친분을 쌓을 요량으로 연회에 참석했다. 연회 분위기가 무르익자 한 사람이 제안했다. “우리는 모두 서울에 살던 벗들로, 멀리 개성에 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