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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이야기

명화 이야기 / 장 폴 마라의 죽음과 샤를로트 코르데

물아일체 2023. 11. 16. 04:00

장 폴 마라

 

장 폴 마라(1743 - 1793년)는 프랑스 대혁명 시기

조르주 당통, 로베스피에르와 함께 자코뱅당의 중심에서

활약한 정치가이다. 

그는 매우 저돌적인 성격의 인물로, 잔혹한 사형 집행자

또는 혁명의 투사라는 대립되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프랑스 혁명이 진행되면서 급진적 공화제를 주창하는

자코뱅당과 이에 반대하는 온건파 지롱드당의 대립과

충돌은 연일 계속되었다.

 

마라를 비롯한 자코뱅당의 지도자들은 루이 16세와

수많은 정치범들을 단두대에서 처형하는 참혹한

'피의 살육'을 자행했지만, 사회적 불안은 가중되었다.

 

이때 온건파인 지롱드당의 열렬한 지지자인 25세의

아름다운 여성 샤를로트 코르데는 마라에 대한 응징이

프랑스의 미래를 위한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다.

 

샤를로트 코르데

 

코르데는 거짓 청원서를 꾸며 마라의 집무실로 찾아갔다.

당시 마라는 심한 피부병 때문에 자주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어야 했으며, 바쁠 때는 욕조에서 업무를

보기도 했는데, 마라와 대면한 코르데는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던 마라의 가슴에 준비해온 단도를 꽂았다.

 

마라는 즉사했으며, 코르데는 현장에서 체포되어

혁명 재판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녀는 "십만 명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한 명의

목숨을 빼앗았을 뿐이다."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마라의 즉음을 표현한 그림을 보면 미술에 정치적

이념이 개입되면 얼마나 교묘하고 강력한 선전도구가

될 수 있는가를 실감할 수 있다.

 

          < 자크 루이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 >

 

 

신고전주의 화가 다비드가 친구인 마라의 영웅적인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그린 작품으로, 마라의 죽음을

마치 종교의 순교자처럼 성스럽게 표현했다

 

마라는 코르데에 의해 방금 칼에 찔린 채 욕조에서

죽음을 맞은 모습이다.

죽음의 순간에도 놓지 않은 오른손의 펜은 그가

진정한 지식인임을 나타내고, 소박한 나무 상자는

그의 검약한 정신을 표현한다.

마라의 가슴에는 칼에 찔린 상처가 선명하고, 바닥에는

암살에 사용된 칼이 나뒹굴고 있다.

 

왼손에 들린 피로 얼룩진 편지는 코르데가 면담을

요청하며 쓴 소개장이다.

편지에는 “1793년 7월 13일, 저는 크나큰 불행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저를 만나주시는 자비를 베풀어

주시리라 믿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마라는 갑자기 칼에 가슴을 찔렀기에 당연히 공포와

극심한 고통 속에서 죽었을 텐데, 그의 표정은 마치

잠을 자는 듯 평온해 보인다.

마라를 순교자로 표현하려던 다비드의 의도가 이런

표정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그림은 한때 ‘혁명의 피에타’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얼마 후 로베스피에르의 실각과 다비드의 투옥으로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게 되었다.

 

         < 장 조제프 비어르츠의 '마라의 죽음' >

 

 

비어르츠의 그림도 기본적으로 다비드와 비슷한

관점에서 그려졌다.

다만, 비어르츠는 혁명을 교란하는 지롱드당 코르데의

암살에 분노하는 민중을 통해 혁명의 정당성을

옹호했다는 점에서 다비드의 그림과 차이가 있다.

 

비어르츠 그림의 주인공은 혁명의 지도자를 잃은

분노에 찬 민중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에서 마라는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한 영웅의

풍모가 아니라, 한 손으로는 칼에 찔린 가슴을,

다른 한 손으로는 욕조를 감싼 천을 부여잡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이다.

 

코르데 역시 혁명가 마라를 죽인 영웅적 당당함이

아니라 벽에 달라붙어 두려워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다. 

 

        < 폴 자크 에메 보드리의 '마라의 죽음' >

 

 

코르데의 정의로운 모습을 섬세한 필치로 묘사하고 있다.

보드리는 정의라는 이름으로 무고한 많은 사람을 죽인

마라를 용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그림에서는 마라의 공포정치를 끝낸 코르데가

주인공이다.

 

코르데는 확신에 찬 눈빛을 하고 있으며, 칼에 찔린

마라의 왼손은 고통에 욕조를 부여잡고 있다.

펜과 종이는 욕조 아래 흩뜨려져 있고, 코르데가 앉았을

의자가 넘어져 있어 그녀가 순식간에 마라를 찔렀음을

암시한다.

 

코르데의 표정은 침착하고 결연하다.

조금의 흐트러짐이나 두려운 기색이 없고, 오히려

암살의 사명감이 엿보인다.

또한, 벽면의 대형 프랑스 지도를 배경으로 서 있어서

프랑스를 구한 자유의 수호자로서의 이미지를 부각하고

있다.

 

            < 장 자크 오에르의 '마라의 죽음' >

 

 

오에르의 그림에서는 마라를 죽인 코르데가 중앙에

배치되어 있다.

오른손에 칼을 든 아름다운 코르데의 표정은 의연하고,

욕조에서 죽은 마라의 눈은 생기 없이 허망하다.

 

            < 에드바르 뭉크의 '마라의 죽음' >

 

  

노르웨이의 표현주의 화가 뭉크가 그린 이 그림의

제목은 '마라의 죽음'이지만, 실제로는 마라의 죽음과는

별로 관련이 없다.

 

그림에서 죽어있는 남자는 뭉크 자신이고,

남자를 죽인 채 벌거벗은 몸으로 서있는 여자는

뭉크가 결혼상대로 생각하던 연인 툴라 라르센이다.

 

사건 현장은 욕조가 아닌 침대로, 두 사람은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상태다.

침대보 위에는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마치 한바탕 정사가 긑난 뒤에 벌어진 치정에 얽힌

살인 사건처럼 보인다.        

 

색상이나 붓질, 그리고 여자의 표정 등이 전형적인

뭉크의 스타일이고, 불안과 트라우마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1902년 뭉크와 라르센은 별장에서 심각한 말다툼을

벌였고, 언쟁 중에 권총이 오발되어 뭉크는 손가락을

다쳤다고 한다.

결국 두 사람은 헤어졌고, 라르센은 뭉크의 친구와

결혼을 했지만 뭉크는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