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사랑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사람,
그러면서도 자신의 품 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을
두 팔 벌려 껴안을 수 없는 사람,
그가 바로 선생님이었다."
"나쁜 사람이라는 부류가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나?
세상에 그렇게 틀에 박은 듯한 나쁜 사람은
있을 리 없지.
평소에는 다들 착한 사람들이네.
다들 적어도 평범한 사람들이지.
그런데 막상 어떤 일이 닥치면 갑자기 악인으로
변하니까 무서운 거네."
"향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은 향을 피우기 시작한
순간에 제한되는 것처럼, 술 맛이 느껴지는 것은
술을 마시기 시작한 찰나인 것처럼,
사랑의 충동도 그런 아슬아슬한 순간이 시간 위에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어.
일단 아무렇지 않게 그 순간을 지나치고 나면,
친밀감이 더해질 뿐 사랑의 신경은 점점
마비되어갈 뿐이지."
"만약 K와 내가 사막 한 가운데 단둘이 있었다면
나는 틀림없이 내 양심의 소리에 따라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사죄했을 거라 생각하네.
하지만 내 안에는 시커먼 인간이 들어앉아 있었지.
그 인간은 나의 자연의 소리를 거기서 틀어막았어."
"숙부에게 속았을 때 나는 사람들은 믿을 수 없는
나쁜 존재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나 자신은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네.
그런데 K 때문에 그 신념이 보기 좋게 무너지고,
나도 숙부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내 마음은 심하게 흔들리게 됐네.
인간에게 등을 돌린 나는 결국 나 자신도 저버리고
닫힌 공간에 나를 가두게 된 것이지."
소설 '마음'의 작가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 근대문학의
아버지 또는 일본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데,
한 때 천 엔짜리 지폐에 그의 초상화가 인쇄되기도
했다.
1914년에 발표된 이 작품의 화자이자 대학생인 나는
한 중년 남성을 선생님이라 부르며 따르고 있었다.
선생님은 다른 사람에게 다정하게 말을 하거나 관심을
보일 줄 모르는 차가운 사람이었다. 그는 자살 직전에
자신이 인간을 등지게 된 아픈 과거사를 밝히는 원고를
보내온다.
선생님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의탁했던 숙부에게
사기를 당하면서 인간에 대한 불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렇지만 자신은 그런 무리와는 다르다고 자부하며
살아 왔는데, 뜻밖에도 자신 속에 내재된 추악한
이기심을 발견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대학시절 하숙집 아가씨에 대한 사랑 때문에
친구 K를 질투해 그를 자살로 내몬 것이다.
선생님은 그녀와 결혼을 했지만, 죽은 친구에 대한
죄책감으로 아내는 물론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피하게
되었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는 내용이다.
소설은 우리에게 언제 변할 지 모르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경계하는 것만큼,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도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또한, 사람들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밝고 편안한
마음 뿐만 아니라 어둡고 불편한 마음까지도
헤아리고 보듬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相識滿天下 知心能凡人 (상식만천하 지심능범인)
알고 지내는 사람이 이 세상에 가득 차 있다 해도
마음까지 알아 주는 사람은 무릇 몇이나 될까.
<고금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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