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하늘에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여러분의 손에 있습니다. 천국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어디 있어도 좋은 것입니다."
"무신론자라고 해서 다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니다.
지옥은 하느님의 얼굴에 침을 뱉은 자만이 가는
곳이다.”
"지옥이라는 곳은 말일세, 인간이 희망을 잃어버린
상태를 말하는 거라네."
"하느님은 우리의 신앙뿐만 아니라, 행위에 대해서도
심판하실 겁니다."
"당신의 정의(定義)대로 한다면 그리스도교 신자란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7일 중에 하루만 교회에 나가고, 나머지 6일은
거짓말도 하고, 중상모략으로 남을 속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겁니까?"
"천국에 들어가는 문은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쪽 문을 택해서 천국에 들어가듯이,
새로 오시는 선교사들은 다른 편의 문을 택했다는 것
뿐입니다."
"교리에 관한 쓸데없이 복잡한 이론은 모두 깨끗이
치워버렸다.
솔직한 이야기로 인간이 금요일에 고기를 먹었다고 해서
영원한 불에 태워지다니, 내게는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그보다는 근본적인 것을 알고 있다면, 곧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라든가, 이웃에 대한 사랑 등, 그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셨을 당시에는, 같은 시대 사람들의
눈에 그분은 위험한 자유사상가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사형을 당하셔야 했던 겁니다."
"질투라는 것처럼 증오해야 할 것은 없다.
패배자라도 하느님을 소유하고 있는 한, 세상 모두를
소유하고 있는 것임을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이리라."
"종교의 좋고 그름은 거기 몸담은 자의 생활을 보면
제일 잘 알 수 있어요.
신부님, 당신은 당신의 모범으로 저를 정복하셨습니다."
스코틀랜드 작가 A. J. 크로닌이 1941년에 출간한 소설
'천국의 열쇠'에 나오는 문장이다.
소설은 신과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청빈하고
용기 있는 삶을 살았던 주인공 프랜치스 치셤 신부의
생애를 통해 인간과 종교의 참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친구이자 신학교 동기생인 프랜치스 치셤 신분와
안셀모 밀리 신부의 이야기가 소설의 중심이다.
하느님과 교회를 사랑하면서도 정작 인간은 사랑하지
않고, 사도의 책임보다는 그 권세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밀리 신부.
교회보다는 인간을, 천국보다는 이승에서의 참다운 삶을
더 소중하게 여기며, 사도의 권세보다는 그 책임에
더 관심을 기울인 치셤 신부.
밀리 신부는 뛰어난 사교술로 좋은 곳에서 승승장구하며
가톨릭 최고의 영예인 추기경에 오른다.
이와 대조적으로 치셤 신부는 힘든 중국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비록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묵묵히 최선을
다하며 시골 작은 성당의 주임신부로 늙어간다.
소설은 이 두 사람 가운데 누가 천국의 열쇠에 가까이
있을까를 묻고 있다.
심화되고 있는 종교 및 종파간의 반목과 인종 갈등,
빈부격차의 확대 속에 사람들로 하여금 어떠한 삶과
믿음이 필요한지 숙고하게 하는 작품이다.
君子和而不同 (군자화이부동)
小人同而不和 (소인동이불화)
군자는 조화를 이루지만 같음을 강요하지 않고,
소인은 같음을 중요시하지만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논어>
클래식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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