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바라는 것은 오직 내가 그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 그리하여 그가 구축해 둔 왕국을 허물려 들지
않는 것 뿐이었다.
실은 그거야말로 굴종이며, 그의 질서와 왕국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전제와 결합되면 그 굴종은 곧
내가 치른 대가 중에서 가장 값비싼 대가가 될 수도
있으나, 이미 자유와 합리의 기억을 포기한 내게는
조금도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이없이 시작된 굴종이었지만 그 굴종의 열매는
달았다."
"너희들은 당연한 너희 몫을 빼앗기고도 분한 줄
몰랐고, 불의한 힘 앞에 굴복하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그것도 한 학급의 우등생인 녀석들이."
"교실 안에서 우리에게 가장 많은 혼란과 소모를
강요한 것은 의식의 파행이었다.
선생님의 격려와 근거 없는 승리감에 취한
우리 중의 일부는 지나치게 앞으로 내달았고,
아직도 석대의 질서가 주던 중압감에서 깨어나지 못한
아이들은 또 너무 뒤쳐져 미적거렸다...
어른들의 식으로 표현하면,
한쪽은 너무나 민주의 대의에 충실해 우왕좌왕했고,
또 한쪽은 석대식의 권위주의를 청산하지 못한 채
은근히 작은 석대를 꿈꾸었다."
이문열이 쓴 중편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4ㆍ19 혁명 전후의 1960년대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공간적 배경은 시골의 작은 초등학교 교실이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당시 사회 전체의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소설은 한 시골 초등학교에서 반 친구들 사이에
군림하는 엄석대라는 인물을 통해 정통성 없는 권력의
허구성을 지적하고, 한병태와 다른 학생들의 모습에서
부조리한 현실에 순응하는, 무기력하고 기회주의적인
대중들의 근성을 비판하고 있다.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1960년대로부터 육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권력의 속성과 대중들의 인식은
크게 변함이 없다.
한줌 권력을 잡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마다하지
않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 권력에 빌붙으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부당한 권력을 거부하고, 그에 맞설 수 있는 진정한
용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歲寒然後知松栢之後凋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
世濁然後知君子之不變 (세탁연후 지군자지불변)
날이 추워진 뒤라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게 되고,
세상이 혼탁해진 후에야 군자의 변함없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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