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이나 신분, 직업 등을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세습이
요즈음 우리 사회의 큰 화두 가운데 하나가 되고 있다.
과거 왕조시대에는 신분이 세습되었다.
오늘날은 부(富)가 세습된다. 부가 새로운 신분인
것이다.
부가 부를 세습하고, 부가 권력까지 독점하며,
결코 오를 수 없는 계층의 벽이 존재하는 사회는
활력을 잃고, 그 존립마저 위태로워진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최근 우리 사회 도처에는 불공정한 부와
고용의 세습, 신분의 세습이 만연하고 있다.
王侯將相 寧有種乎 (왕후장상 영유종호)
왕과 제후, 장수와 재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겠는가.
통일제국 진나라를 기울게 한 중국 최초의 농민봉기
진승 오광의 난을 일으킨 진승이 했던 말이다.
사람의 신분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인데,
고려시대 만적의 난을 일으킨 노비 만적 또한 이 말을
인용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신분 해방운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비록 소득의 불평등이 심하더라도 사회 안에서 계층간의
이동성이 충분하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계층간의 이동이 불가능한 사회로
굳어지고 있다.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이 좋은 신분을 대물림할 때
계층 상승을 꿈꾸며 노력하는 저소득 계층의 흙수저들은
좌절할 수 밖에 없다.
不患寡而患不均, 不患貧而患不安
(불환과이환불균, 불환빈이환불안)
재부가 적은 것 보다 분배가 고르지 않음을 걱정하고,
가난한 것을 걱정하기 보다 불안한 것을 걱정한다.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이천 오백여 년 전 공자 조차도
부의 불균형과 그에 따른 사회적 불안을 지적하고 있다.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절망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공정한 경쟁의 기본 수칙마저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실업률 속에 재계 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신분세습이 만연하고 있다.
청년층의 취업 문제가 초미의 관심인 상황에서 잇달아
터져 나오는 채용비리는 우리 사회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젊은이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일부 대기업 노조는 높은 연봉과 복지혜택을 누리는
일자리 세습을 위한 현대판 음서제를 강요하고 있다.
음서제란 고려와 조선시대 공신과 5품 이상 문무 관료들의
후손에게 과거시험을 거치지 않고 벼슬을 주던 제도이다.
얼마 전까지 채용비리는 민간기업만의 문제로 보였으나,
이제는 공공기관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연예, 체육분야에서도 고용세습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대형교회의 목사직 세습도
논란이 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왕조시대처럼 부 뿐만 아니라 신분까지
대물림되는 전근대적 사회로 퇴행하고 있다는 젊은이들의
우려와 자조가 반영된 말이 '헬조선'이고, '금수저 흙수저'
계급론이다.
사회적 약자들의 비관적 삶이 굳어지고 꿈과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증가한다는 것은 단지 개인의 불행에 머물지
않고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이다.
계층 상승의 주요 통로가 부모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결정된다면 균등한 기회와 공정한 경쟁을
기본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가치마저 흔들릴 수 있다.
젊은이들에게 부모 잘 만나는 것이 더 이상 최고의
스펙이고 경쟁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의 아픔을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당연시 하거나 힘 내라고 말만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힘을 낼 수 있는 꿈과 희망을 주어야 한다.
그들이 동일한 출발선에서 공정한 경쟁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이 기성세대의 책임이고
의무이다.
누구나 노력하면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는
계층상승의 사다리를 복원하고, 발전의 원동력인
도전정신과 긍정의 사회적 분위기를 되살리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르네상스의 지평을 연 이탈리아 최고의 시인 단테는
그의 명저 '신곡'에서 헬(Hell) 즉, 지옥은 하늘에 별이
없는 곳, 희망이 없는 곳이라고 묘사했다.
이 땅의 젊은이들과 사회적 약자들이 희망의 별이 없는
헬조선이 아니라 수많은 별들이 빛나는 희망의
대한민국에서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더욱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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