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히트작 '오징어 게임'에서 1번 참가자
오일남 역할을 맡았던 78세의 원로 배우 오영수가
지난 1월 한국인 최초로 골든 글로브상 TV드라마부문
남우 조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오징어 게임'에서 오일남은 구슬치기 게임을 하면서
자신을 속인 성기훈에게 "우린 깐부잖아."라고 말하며
마지막 구슬을 건네고 죽음을 선택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덕분에 '깐부'라는 단어가 한동안 유행하기도 했다.
깐부는 친한 단짝 친구, 짝꿍, 같은 편, 동반자를 뜻하는
은어로만 알려져 있을 뿐 그 유래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는데, 관포지교의 관중과 포숙을 뜻하는 '관포'의
중국식 발음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어 흥미를 끈다.
관중과 포숙의 사귐이라는 의미의 관포지교는
지난 2천 7백여 년 동안 친구 사이의 두터운 우정을
비유하는 대표적인 고사성어로 자리잡아 왔다.
비록 네 글자에 불과한 고사성어이지만, 그 안에는
드라마 몇 편을 제작할 수 있을 정도의 방대하고
재미있는 스토리가 담겨 있다.
관중과 포숙은 BC 7 세기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에
살았던 인물들이다.
관중의 본래 이름은 이오(夷吾)였으며, 중(仲)은 둘째
아들이라는 의미의 자(字)이다.
포숙의 이름은 아(牙)였으며, 숙(叔)은 셋째 아들을
의미하는 자(字)였다.
관중과 포숙의 삶을 살피다 보면 관중의 냉철하면서도
이성적인 행동과 포숙의 끝없는 이타적 이해심이
조화를 이루었음을 알게 된다.
관중과 포숙은 어렸을 때부터 친구 사이였는데,
가난하고 궁색한 관중은 여러 차례 포숙을 속이고
이용했지만, 포숙은 개의치 않았다.
관중은 제 환공(소백)이 주군의 자리를 놓고 형인
규와 경쟁을 벌일 때 규의 편에서 환공에게 활을
쏘기까지 했던 정적이었다.
그래서 환공은 관중을 죽이려고 했으나 신하인 포숙은
"왕께서 제나라 하나만 다스리는 것으로 만족하신다면
신 하나로도 충분할 것이나, 천하의 패자가 되시려면
관중을 기용하십시오."라고 간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재상의 자리마저 관중에게 양보했다.
이는 포숙이 관중을 친구 이전에 천하를 경영할
능력을 지닌 탁월한 인재로 보았기 때문이다.
환공은 포숙의 간언을 받아들여 관중을 재상으로
임명했으며, 제나라는 관중의 탁월한 정치력과
능력을 바탕으로 부국강병에 성공했고, 환공은
춘추시대 첫 번째 패주가 되었다.
훗날 관중은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이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叔也)”라고
말 할 만큼 관중에 대한 포숙의 우정은 이타적이었다.
이에 반해, 관중은 병이 깊어 더 이상 재상직을
수행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후임 재상으로 포숙이
어떠한가?" 묻는 환공에게 “포숙은 마음이 여리고,
선악 구분이 워낙 철저해 결단력과 융통성이 필요한
재상감으로는 적절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며
포숙 대신 습봉이라는 사람을 후임 재상으로 추천했다.
지난 날 죽임을 당할 처지에 놓였던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고, 재상으로 천거까지 해주었던 포숙에 대한
관중의 이 같은 말은 지나치게 냉정한 평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친구 포숙이 재상이 되어
마음 고생하는 것 보다 자신의 강직하고 순수한 인성을
보존하면서 편히 살라고 하는 배려였다고 할 수도 있다.
한편, 포숙은 관중이 자신을 후임 재상으로 천거하지
않았다는 말을 전해 듣고도 섭섭해하지 않고
"역시 관중이로다. 그는 사사로운 인연으로 대업을
망치지 않는 인물이다."라며 관중을 오히려 칭찬했다.
관포지교는 얼핏 관중에 비해 포숙이 손해를 본
관계인 것처럼 보일 수 도 있겠지만,
사마천의 사기에는 "세상 사람들은 관중의 뛰어난
재능 보다 포숙의 사람 보는 혜안을 더 칭찬했다."고
적고 있어 결코 포숙의 인생이 손해를 본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관중은 포숙이 있었기에 자신의 능력을 펼치며
여한이 없는 삶을 살 수 있었고, 포숙 또한 관중이
있었기에 오랜 세월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며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
관포지교 일화는 우리에게 우정이란 서로 부족한 것을
보완해 주는 관계임을 교훈으로 전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가 이제 열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권력을 좇는 사람들의 권모와 술수, 거짓과 기만이
점입가경이다.
눈앞의 이익에 매몰돼 신의가 바닥난 정치판에서는
어제의 친구가 쉽게 오늘의 적이 되기도 한다.
이 즈음에 깐부와 관포지교를 되새겨 보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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