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서 찾는 삶의 지혜와 즐거움!
고전은 마르지 않는 지혜의 샘, 스토리텔링의 보물창고.

고전에서 배운다

고전에서 배운다 / 최고의 킹 메이커이자 가치투자의 귀재 여불위

물아일체 2022. 1. 26. 08:42

< 여불위, 그는 어떤 인물인가 >

 

누구에게나 기회가 한 번은 온다.

그러나 기회가 온지도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과

준비가 부족해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기회를 잡아 성공에 이르는 사람도 있다.

주어진 기회를 성공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항상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치밀한 계획과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여기 우연히 찾아온 기회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고

일생일대의 투자기회로 삼아 성공한 사람이 있다.

일개 장사꾼에서 전국시대 최강대국 진()나라의

2인자에 올라 파란만장한 인생 후반전을 열어간

사람이 바로 여불위이다.

 

여불위(기원전 292년 - 기원전 235년)는 한()나라

출신으로, 열국을 돌아다니며 장사로 큰 돈을 벌었다.

하지만 그의 인생에서 큰 돈을 모은 것 보다

더 위대한 성과는 조나라에 인질로 와 있던

진나라의 영이인(영자초)을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만들고, 자신 또한 상인에서 정치가로의 대변환을

실현한 것이다.

 

그는 중국 역사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사를 통틀어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킹메이커이자 잠재력을 지닌

사람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해 초대박을 터트린

가치투자의 귀재였다고 할 수 있다.

 

< 진흙 속의 진주를 발견하다 >

 

조나라의 수도 한단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던

여불위는 우연한 기회에 조나라에 인질로 와 있던

진나라 공자 이인을 만나게 된다.

이인은 진나라의 다음 왕위에 오를 태자 안국군의

아들이었지만, 한낱 서자 출생인 데다가 서열이 높은

형제들이 워낙 많았기에 그의 존재감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진나라가 조나라를 자주 공격하며 괴롭혔던

탓에 조나라는 인질로 와있는 이인을 박대했다.

 

그러나 여불위는 이인이 잘만하면 자신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진기한 물건임을 금방 알아 보았다.

진나라 태자 안국군은 아들이 스무 명이나 되지만,

정실부인인 화양부인에게서는 자식이 없었다.

여불위는 이인을 화양부인의 양자로 들일 수만 있다면

안국군의 뒤를 잇는 왕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꿰뜷어 보았다.

 

모국인 진나라로부터 이렇다 할 관심과 지원을

받지 못해 조나라에서 빈한한 인질 생활을 하고 있던

이인은 후원자를 자청하고 나선 거상 여불위의 뜻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여불위는 이인을 진나라 왕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한편, 애첩인 조희까지

이인에게 주는 등 정성을 다했다

 

< 치밀한 로비 전략을 펼치다 >

 

진나라 태자 안국군의 부인 화양부인은 비록 슬하에

자식은 없었으나, 안국군의 정실부인이자 애처였기

때문에 강력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언젠가 안국군의 서자가 왕이 되면

자신의 모든 세력을 잃게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 처지의 화양부인에게 여불위는 그녀의 주변

일가 친지들을 통해 조나라에 인질로 가 있는 이인이

화양부인을 늘 존경하고 그리워하며 친자식처럼 각별한

효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어필했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화양부인은 곧 남편 안국군을 설득해

이인을 양자로 삼게 되었고, 자신이 초나라 출신이라는

점을 고려해 이인에게 '자초'라는 이름까지 하사했다.

 

이즈음 진나라가 조나라를 침입하자 조나라는 인질인

자초(이인)를 죽이려 했지만 그는 여불위의 도움으로

무사히 조나라를 탈출해 진나라로 돌아왔다.

 

<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

 

진나라의 소양왕이 노환으로 죽고, 그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한 태자 안국군, 즉 효문왕은 화양부인을

왕후로, 자초(이인)를 태자로 삼았지만 왕위에 오른 지

불과 3일 만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소설 '열국지'에는 여불위가 태자인 자초를 하루 빨리

왕위에 올리기 위해 효문왕을 독살했다고 쓰여 있다.

사실여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자초는 보위에 올라

장양왕이 되었고, 그의 부인이자 여불위의 전 애첩

조희는 왕후가 되었다.

 

장양왕은 조나라에서 인질 노릇이나 하며 어렵게

지내던 자신을 진나라 왕으로 만들어준 여불위를

승상으로 임명하고 문신후에 봉하는 한편, 낙양

10만호를 식읍으로 하사했다.

여불위가 오랜 시간 공들여 야심차게 수행해온

왕 만들기 프로젝트가 마침내 결실을 맺은 것이다.

< 행운은 계속된다 >

 

여불위의 권력은 자초가 장양왕으로 왕위에 오른 지

3년 만에 죽은 후에도 변함없이 이어졌다.

장양왕이 죽자 장양왕과 그의 부인 조희 사이에서

태어난 외아들 영정이 13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는데, 이 아이가 훗날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을

이루는 진시황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여불위가 나이 어린 영정을 왕으로

세워 자신의 권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장양왕도

독살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뿐만 아니라 영정이 장양왕의 아들이 아니라,

실제로는 여불위의 자식이라서 그랬다는 설도 있다.

즉, 여불위가 자신의 애첩 조희를 조나라 한단에서

인질 생활을 하고 있던 자초(이인, 장양왕)에게

주었을 때 조희는 이미 여불위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고, 그가 곧 영정(진시황)이라는 것이다.

여불위는 어린 왕 영정을 보필한다는 명분으로

승상보다도 높은 상국의 자리에 올라 실질적으로 최고의
권력자가 되었으며, 영정은 그를 중보, 즉 작은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다.

 

<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다 >

 

남편인 장양왕이 죽은 뒤 과부가 된 진시황의 생모

조태후(조희)는 과거 자신과 연인관계였던 여불위를

수시로 자신의 침소로 불러 정을 통했다.

그러나 여불위는 선왕의 정비와 간통했다는 혐의를

받을까 두려웠다. 그래서 그는 자기 대신 조태후의

욕망을 충족시켜 줄 '노애'라고 하는 양물이 크고

정력이 대단하기로 소문난 젊은이를 환관으로 위장시켜

조태후에게 보냈다. 

 

이후 조태후와 노애는 연인이 되어 진시황의 눈을 피해

아이를 둘이나 낳았고, 노애는 자신의 아들을 진나라

왕으로 세우려는 음모를 꾸미고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성인이 된 진시황은 반란을 신속하게 진압했고,

노애와 그의 삼족을 멸하였으며, 조태후와 간통해 낳은

두 아들도 죽였다.

또한 자신의 어머니 조태후마저 별궁에 유폐시켜버렸다.

< 달도 차면 기운다 >

 

진시황은 노애의 반란에 대한 책임을 물어 여불위를

권좌에서 축출했다.

또한, 여불위에게 “그대가 진나라에 무슨 공을 세웠기에

10만 호를 식읍으로 받았는가?

그대가 나와 무슨 관계이길래 중보라 불러야 하는가?”

라는 내용의 글을 보내 자결을 압박했다.

어느새 성인이 되어 독자적 통치능력을 갖추게 된

진시황에게 여불위는 부담스러운 존재였던 것이다.


여불위는 최고의 권력가에서 어쩌면 자신의 아들일지도

모르는 진시황에 의해 한 순간 나락으로 떨어져

모든 권력과 명성을 잃었다.

크게 낙담한 여불위는 결국 음독자살로 57년의 생을

마감했다.

그는 멈출 줄 모르는 권력에 대한 욕심 때문에

물러나야 할 때를 놓쳐 자신이 이룬 화려한 성공의

빛을 바래게 한 것이다.

 

< 사람은 갔어도 흔적은 남다 >

여불위는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남기기 위해 오늘날의 

백과사전에 해당하는 '여씨춘추'라는 책을 편찬했다.

막대한 자금을 들이고 많은 석학들을 동원해 편찬한

'여씨춘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던 여불위는

그 책에서 한 자라도 빼거나 더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천금을 주겠다고 공언했다.

글자 하나에 천금의 가치가 있다는 뜻으로,

훌륭한 글씨나 문장을 이르는 일자천금(一字千金)

사자성어가 여기서 유래했다.

 

또한, 여불위가 조나라 수도 한단에서 이인(자초)을

처음 만났을 때 언급했던 기화가거(奇貨可居)라는 

사자성어도 전해지고 있다.

잠재력을 가진 사람이나 좋은 물건을 보면

미리 투자하거나 챙겨 놓는다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