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단상

봄, 봄, 봄

물아일체 2025. 3. 13. 12:10

 

며칠째 봄의 불청객 황사와 미세먼지에

관심을 빼앗기고 있지만,

매화, 산수유 같은 봄의 전령사들이

꽃망울을 터트렸다는 남녘의 화신(花信)

이어지고 있다.

머잖아 북상하는 꽃 소식을 서울에서도

접하게 될 것 같다.

 

일년의 사계가 시작되는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희망의 계절이다.

겨우내 죽은 듯 활동을 멈췄던 생명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봄은 음양오행에서 목()에 해당하며,

방위로는 동쪽이고, 시각으로는 아침,

색깔로는 푸른 색이다.

 

또한, 봄은 인생으로 보면 소년기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궁궐을 배치할 때

세자의 거처를 동쪽에 두고, 동궁(東宮) 또는

춘궁(春宮)이라고 불렀다.

이는 세자가 다음 왕위를 이어갈 떠오르는

태양인 점을 고려한 것이다.

이에 비해 늙은 대비가 머무는 곳은

해가 지는 서쪽에 두고, 서궁(西宮)이라 했다.

 

이은상 시에 홍난파가 곡을 붙인 '봄처녀'

봄을 노래하는 대표적인 가곡으로,

이 즈음에 한 번쯤 감상해 봄직하다.

어느 폴란드 시인은 봄은 처녀, 여름은 어머니,

가을은 미망인, 겨울은 계모'라고 재미있게

표현하기도 했다.

봄을 처녀에 비유하는 경우는 흔한 일이다.

봄이 새 생명을 잉태하고 창조하는 계절인 점에

착안한 것 같다.

 

여자가 남자보다 봄을 더 탄다는 속설이 있는데,

과학적으로도 어느 정도 증명이 된다고 한다.

봄이 되면 따뜻하고 강한 햇살로 인해

호르몬 분비가 촉진되는데, 여성은 남성 보다

일조량에 민감할 뿐만 아니라, 감성적 측면 또한

발달했기 때문에 이런 변화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이를 음양오행의 입장에서는,

()에 해당하는 봄에는 만물이 움트는

()의 기운이 충만하기 때문에,

음기(陰氣)를 띤 여성이 남성 보다 더 민감해

진다고 설명한다.

반대로, ()의 계절인 가을에는 만물이

쇠잔해지는 ()의 기운이 강해져,

양기(陽氣)가 센 남성이 민감해지는 것이다.

 

一年之計在於春 一日之計在於寅

(일년지계재어춘, 일일지계재어인)

일 년의 계획은 봄에 있고,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

 

春不種則秋無穫 少不學則老無知

(춘부종즉추무확, 소불학즉노무지)

봄에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고, 젊을 때 배우지 않으면 늙은 뒤에

아는 것이 없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하루, 일년, 일생에 있어서

그 출발과 시작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철저한

준비와 노력을 당부했다.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중국 4대 미녀 중 한 명인 왕소군의 슬픈 사연을

노래한 당나라 시인 동방규의 시 소군원(昭君怨)

나오는 구절이다.

초패왕 항우를 물리치고 건국한 한나라는

결혼정책으로 북방 흉노족의 침입을 막으려 했는데,

원제 때 궁녀였던 왕소군은 공주로 신분을 세탁한 후

흉노의 왕 선우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고, 흉노의

에서 불우하고 한 많은 일생을 마쳤다.

 

역사의 흐름 속에 '춘래불사춘'의 상황과 형편은

늘 있어 왔다.

1980년 우리나라는 유신의 긴 터널을 빠져 나와

금방이라도 민주화가 실현될 것 같았던 '서울의 봄'을 

맞았다.

 

그러나 유력 정치인 3김 가운데 한 명이었던 김종필

전 총리는 당시의 분위기를 '춘래불사춘'으로 표현

하며 걱정했는데, 그의 불길한 예감은 전두환의

등장으로 적중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45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탄핵 찬성과

반대 문제로 국민들이 양분되어 격렬한 시위에

내몰리고 있으니, 올 봄 또한 동방규의 시 구절

'춘래불사춘'을 떠올려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하루 빨리 정치가 안정되어 계절의 봄 뿐만 아니라

정치의 봄, 나아가 경제의 봄어서 왔으면 좋겠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추운 겨울을 보낸 영산홍이

소담스런 꽃을 참 많이 피웠다.

대견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점심을 먹고 나면, 몸이 나른하고 졸음이 밀려

오는 것을 보니 봄은 봄인가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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